“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한량없는 아승기 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져다 보시한
다고 해도, 또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보리심을 내어 이 경을 지니되 사구게만이라도 받
아 지녀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한다면 그 복이 앞의 복보다 더 뛰어날 것
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할 것인가? 상을 취하지 말고, 여여부동해야 한다. 왜
냐하면 일체의 유위법은 꿈·허깨비·물거품·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
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다 설하시자,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그
리고 일체 세상의 천인·인간·아수라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며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이 품의 대체적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만약 어떤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져다가 보
시를 한다고 하더라도, 또 선남자 선여인이 보리심을 내어 이 경전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
거나 더 나아가 경전 중의 사구게라도 받아 지녀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한다
면, 그 복이 저 앞 사람의 복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 경을 설해야 하는가? 마음이 곧 만법(萬法)이
며, 본래 고요한 열반이자 무생(無生)이라는 관점에 자신을 안주시켜야 한다. 어떠한 지견
도 내지 말고, 모든 상에 집착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 안팎의 일체 경계에 휘둘리지 말고 여
여부동해야 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생멸 변화가 있는 모든 존재 현상은 꿈·환영·물거품·
그림자 같으며 찰나에 번쩍이는 번개 같고, 잠깐 머무는 새벽이슬과 같으니, 일체를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비구니·남녀 거사들 그리고 일
체 세상의 천인·아수라 등 중생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며, 이를 믿고 받
아들이고 몸소 체험하고 힘써 실천하였습니다.
이 품은 금강경의 마지막 품입니다. 전반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거나 사구게라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한다면, 그 공덕이 한량없는 칠보로
보시한 공덕보다 더 뛰어나다는 점을 여섯 차례나 언급하셨습니다. 이 품의 핵심은 어떻게
남을 위해 설해야 하는지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상을 취하지 말고 여여부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을 취하지 말고
여여부동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래는 진공 경계에 안주하시어 법상을 내
지 않으시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위해 시공간에서 상황에 맞게 설법을 하십니
다. 그러나 ‘여래의 진공’에서는 중생의 신상(身相)도 생기지 않고, 중생의 심상(心相)도 생
기지 않으며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 설법한다는 상 역시 생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생을
두루 제도하되 제도할 중생이 없으며 설할 불법 역시 없습니다. 이를 이름하여 “상을 취하
지 말고 여여부동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여래’의 말씀과 침묵, 움직임과 멈춤은 모두가 불법입니다. 만약 좌선 중 몸과 마음이 허
망함을 알면 그 몸의 시리고 저리고 춥고 붓고 아픈 것이 허황하고 머릿속의 잡념도 허황하
며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경계가 허황하며 몸 밖의 모든 소음도 허황하다는 것을 알게 됩
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허망하여 실체가 없음을 알고 거기에 안주한다면 그것이 바로 ‘머
무는 데가 없이[無所住]’ 안주하는 것이며(몸과 마음 안팎이 다 허망한데 어디에 안주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상을 취하지 말고 여여부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수행자가 어묵동정(語默動靜)과 행주좌와(行住坐臥)의 모든 순간에 능히 상을 취하
지 않고 여여부동하면 그것이 바로 ‘법계대정(法界大定)’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만법은 본래
생겨남이 없으니 이것이 곧 형체도 모습도 없는 ‘여래공정(如来空定)’입니다. 여래께서는 공
정(空定)에서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나 헤아릴 수 없이 허다한 중생이 이로 말미암아
득도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상을 취하지 않고 여여부동해야 한다.”에 대
해 해석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경계에서는 이 세상의 일체법은 꿈·환영·물거품·그
림자 같고 번개와 이슬 같아서 부처님은 법을 듣는 모든 제자에게 이같이 보라고 가르치셨
습니다.
금강경의 이 마지막 게송은 처음 이 경전을 접한 사람들이 흔히 인용하곤 합니다. 비단
늘 입에 달고 살뿐만 아니라 좌선할 때도 이 세계의 만법을 꿈·환영·물거품·그림자·번개·이
슬로 관상(觀想)하려 애쓰기도 하는데 이는 아주 크게 잘못된 처사입니다. 왜냐하면, 이것
은 그들이 또다시 꿈·환영·물거품·그림자·번개·이슬의 상에 집착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일체를 꿈이나 거품으로 간주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중생들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포함한 이 세계의 만법이 찰나에 변화 생멸하는 무상(無常)한 것이자 허망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집착하지 말 것이며 삶 속의 모든 변화와 득실에
집착하여 고통스러워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번뇌와 고통 역시 이슬과 번개처럼
허망한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 안주하여 여러분을 미혹시키고 여러분을 괴롭게 하고, 여러
분을 즐겁게 하고 여러분을 갈구하게 하고,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모든 것을 한낱 꿈이나
환영으로 여길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이 그것을 잡을지 내려놓을지 더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
다. 그냥 꿈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설법이 끝나자 장로 수보리와 법을 경청한 모든 대중이 아주 기뻐하면서
즉시 이를 신수봉행(信受奉行)하였습니다. 신수봉행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 일체를 알아듣고 믿고 받아 지닌 후 이를 받들어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