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품 의법출생분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보
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이 진정 많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곧 복덕의 본성이 아닌 까닭에 여래
께서 복덕이 많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며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
면, 이 복이 저 복보다 더 뛰어나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든 부처와 모든 부처의 아뇩
다라삼먁삼보리법이 모두 이 경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른바 불법이란 것
은 곧 불법이 아니다.”

이 품의 대체적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물으셨습니다.
“가령 지금 어떤 한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만큼 많은 귀한 보물을 갖고 보시를 한다면 그가
이로 얻는 복덕과 선한 과보는 많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의 복덕과 선한 과보는 아주 많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하면, 이 사람이 행한 복덕은 세간의 상(相)이 있는 복덕이기에 이로부터 선한 과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사람이 보시하
는 이도 공하고, 보시하는 물건도 공하고, 받는 이도 공하다고 생각하면서 보시했다면 그가
얻는 복덕은 허공과 같이 헤아릴 수 없는데, 이를 복덕의 본성이라 합니다.”

여기에서 수보리는 상에 머물면서 행한 보시인 경우라야만 그 얻는 복덕을 ‘많고 적음’으
로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는 복덕도 공하고 수행자가
집착하는 바도 없고 바라는 바도 없으므로, 모든 복덕은 곧 자성의 실상으로 들어가 공성으
로 회귀합니다. 복덕의 본성은 공(空)이기 때문에 이를 복덕성(福德性)이라 부릅니다. 따라
서 ‘많고 적음’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금강경 제4품에서 부처님께서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한다는 정지견을 말씀하셨습
니다. 그러기에 수보리는 자신이 부처님 말씀을 이해했음을 보이기 위해 여기서 이렇게 설
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화에서 여래는 수보리의 ‘복덕성’, ‘복덕상’ 이 두 개념에
대하여 그 어떠한 평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경계에서는 상을 보는 것이
곧 본성을 보는 것[見相即見性] 즉 색공불이(色空不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생이 상에 집착하기에 여래께서는 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해야 함을 말씀하셨지
만 보시하는 자도 원래 공하고 보시하는 모든 것도 본래 공합니다. 중생이 설령 머무는 데
가 있고 집착하는 바가 있더라도 부처의 경계에서는 여전히 머무는 데가 없고 머무는 사람
도, 머무는 물건도 없이 만물은 본래 청정합니다. 그러나 수보리가 이렇게 말해도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이 경문의 뜻을 이해하여 이를 따라 수행하고 증득하며 더 나아가 그중
의 사구게라도 타인을 위해 해설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은 앞의 그 사람을 뛰어넘을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수보리여, 시방 삼세 모든 부처와 모든 부처가 성취한 무상정
등정각의 법문이 모두 이 경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본 경전의 견지가 수행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계십니
다. 왜냐하면 이 경전을 배우고 수행하면 비단 세간법에서 가장 큰 복덕을 얻을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모든 부처님이 또한 이 경전의 모든 견지와 방법에 따라서 행하고 수행 증득함으
로써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후, 곧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견지를 다시 언
급하시며 수보리를 일깨워주셨습니다. 사실 이는 한동안은 깨어 있다가 한동안은 정신이 혼
미해지는 여러 제자를 일깨워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원문은 “이른바 불법이라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다.”인데, 이는 “내가 방금, 이 경전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비록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대들이 상에 집착하여 이것이야말로 불법이라고 집착해서도 안 된다.”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설법은 거의 모두 대기설법, 즉 상대방의 근기에 근거하여 법을 설하는 것
인지라, 부처님께서는 제자들 마음속의 의혹과 맹점을 보시고 단계적으로 나아가면서 좌우
를 청소하여, 제자들이 부처님의 설법에 따라 겹겹이 쌓인 지견을 깨뜨리고 겹겹이 쌓인 집
착을 타파하게 하십니다. 모든 상이 깨어짐에 따라, 제자들의 마음은 겹겹의 필터를 벗겨낸
것처럼 그들은 마침내 그 실상을 조금씩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하신 가르침은 마치 뒷걸음질 치며 제자들의 마음을 청소하는 것과 같습니다. 층층이 청소
하며 나아가는 동시에 자신이 앞서 남긴 발자국까지 쓸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중생의 마음속에 진공 경계가 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서는 이 경전의 공덕과 중요성을 모두 말씀하신 뒤 바로 전에 한 설법으로 인해 제자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을지 모를 집착을 쓸어버리시고는, 곧 다시 법상에 집착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시어 제자들이 모든 상에 집착하지 않는 진공 경계에 다시 안주하게 하십니다. 제자
들 마음속의 집착이 여전히 다 깨지지 않은 것은 확실하므로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끊임없이
설법하여 제자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청소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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