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수다원이 ‘나는 수다원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
가? ”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은 이름하여 입류라고 하지만 실로는 들어간
바가 없으니 색·성·향·미·촉·법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비로소 이름하여 수다원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사다함이 ‘나는 사다함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
가? ”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은 이름하여 일왕래라고 하지만 실로 왔다 감
이 없으므로 비로소 이름하여 사다함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아나함이 ‘나는 아나함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
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은 이름하여 불래라고 하지만 실로 돌아오지
않음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비로소 이름하여 아나함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는
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로 아라한이라 이름할 수 있는 법이 도무지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곧 아상·인상·중생
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무쟁삼매를 얻은 사람 중에서 제일이라 하셨는데, 이는
욕심을 여읜 첫째가는 아라한이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나는 욕심을 여읜 아라
한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야
말로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수보리가 실로 행하는 바
가 없으므로 비로소 수보리야말로 아란나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이 품의 대체적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물으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다원(초과아라한을 가리킴)이 ‘나는 수다원과를
얻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다원의 뜻은 입류(入流), 즉 범인의 영역을
떠나 성자의 경계에 이른 것으로 성인의 부류에 들어간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자는 상이 없으므로, 실제로 들어간 바가 없습니다. 단지 눈·귀·코·혀·몸·뜻에 세운 색·성·
향·미·촉·법 등 외적인 경계에 흔들리거나 유혹되지 않아 이에 더는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않
고 내려놓는 것을 일러 수다원이라 이름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다함(이과아라한을 가리킴)이 ‘나는 사다함과를
얻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다함의 뜻은 왕래(往來), 즉 한 번은 천상에
묵고 한번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삶을 받아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본성을 놓
고 볼 때 실제로 가고 옴이 없습니다. 왕래라는 것은 단지 허망한 현상일 뿐이므로 사다함
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나함(삼과아라한을 가리킴)이 ‘나는 아나함과를
얻었다’는 생각을 해서는 되겠는가?”
수보리가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아나함을 이름하여 ‘불래(不來)’, 즉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인데 이는 윤회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인간 세상에 와서 태어나지 않
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자성을 놓고 볼 때 그 본질은 실제로 오고 감이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아나함이라 이름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과를 얻었다’는 생각을 해
서는 되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아라한이라고 이름할 수 있는 고정된 형
상과 모습이 도무지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는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무쟁삼매(無諍三昧)의 경계를 증득하여, 즉 자성이 본래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청정하고 번뇌가 없는 상태이기에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이며, 욕구를 여읜 첫째
가는 아라한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는 제가 욕망을 여읜(모든 욕망을
끊어 청정하고 오염이 없는) 아라한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과를 얻었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세존께서는 수보리가 숲속의 조용한 곳에서
고요히 수행하기를 즐겨 윤회의 해탈을 향해 가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수보리가 비록 숲속의 조용한 거처에서 고요히 수행하나 마음은 여여부동하여 심신 안팎의
일체 경계에 휘둘리지 않고, 만법이 본래 공하다는 견지에 안주해 있어 숲속에서 고요히 수
행한다는 이 일에 집착하지 않으며, 과거와 미래의 그 어떤 상도 취하지 않으므로, 세존께
서는 수보리야말로 숲속의 조용한 거처에서 고요히 수행을 즐겨 윤회에서 해탈을 향해 나아
가는 사람이라 이르신 것입니다.”
제7품부터 여래께서는 수보리에게 반문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반문을 통해 제자들로 하
여금 자신들이 마음속으로 집착하는 의혹과 장애에 대해 반성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 앞의
두 품에서는 제자들이 무상정등정각 과위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처님의 설법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이 품에서는 수보리에게 초과에서 사과 아라한에 이
르기까지 얻을 수 있는 과위가 있느냐고 연속 반문하시자 수보리가 일일이 대답했습니다.
“그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과위는 없습니다. 매 하나하나의 과위 성취는 다만 일부 집착하
는 경계를 깨뜨리고 내려놓는 것이므로 이것을 사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이라는 가명을
붙인 것에 불과합니다.”
부처님께서 이 품을 다 말씀하셨을 때, 초과에서 사과까지 증득한 제자 중 어떤 이들은
곧바로 성취한 바가 있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곧 본래 물듦이 없고, 본래 생멸이 없으며, 오
고 감도 없고, 본래 동요가 없으며, 본래 청정하고 번뇌가 없는 필경공(畢竟空)의 경계인 자
성에 안주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이 품에 나오는 네 명사를 해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즉 사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
한은 불제자들이 성취한 초과에서 사과까지의 산스크리트어 음역 명칭입니다. 이것은 불제
자들 사이에서 선정 수행과 증량(證量), 경계를 기준으로 하여 나눈 네 등급입니다. 마지막
아라한을 사람 중 으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 세상에서 무색계 천인의 생명 상태에 오랫
동안 입정하여 긴 세월 동안 윤회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네 과위 모두 공성으
로 회귀하는 길 위의 풍경과 화성(化城)일뿐 아직 완전한 해탈에는 이르지 못했기에 공성으
로 증입한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