標題:金剛經 講義 금강경 강의
編號:06
日期:2014
視頻連結:https://m.ningway.com/video?no=F1006
제4품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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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复次,须菩提!菩萨于法,应无所住,行于布施,所谓不住色布施,不住声香味触法布施。须菩提!菩萨应如是布施,不住于相。何以故?若菩萨不住相布施,其福德不可思量。须菩提!于意云何?东方虚空可思量不?”“不也,世尊!”“须菩提!南西北方四维上下虚空可思量不?”“不也,世尊!”“须菩提!菩萨无住相布施,福德亦复如是不可思量。须菩提!菩萨但应如所教住。”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법에 머무는 데 없이 보시해야 한다. 이른바 색에 머
물지 말고 보시해야 하며, 성·향·미·촉·법에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
은 반드시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상에 머
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동방의 허공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남·서·북방과 네 간방, 상하의 허공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보살이 상에 머묾이 없이 보시하면, 그 복덕 또한 이와 같아 헤아릴 수 없
다.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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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这一品中,佛接着对须菩提说:菩萨在修证佛法时,应无所住地施舍一切。在舍时,心不应住在色、声、香、味、触、法上,要不住于任何相来行布施。佛说的“色、声、香、味、触、法”叫“外六尘”,是相对于人的“眼、耳、鼻、舌、身、意”建立的。如眼观色、耳闻声、鼻嗅香、口尝味、身体有触觉,头脑有概念、认知和定义,即指法。众生要想成就佛果,当然对此世界的万事万物不能留恋,要能舍离。菩萨要能内舍六根、外舍六尘,但心却不能着相而舍,否则就有得失的苦恼。
이 품에서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살이 불법을 수행할 때 응당 머무는 데 없이 모든 것을 보시해야 한다. 보시할 때 마
음은 응당 색·성·향·미·촉·법에 머물지 말고, 그 어떤 상에도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색·성·향·미·촉·법’을 외육진(外六塵)이라 하는데, 이는 인간의 ‘눈· 귀·코·혀·몸·뜻’을 상대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물체,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입으로 맛보는 맛, 몸으로 느끼는 감촉, 그리고 머릿속의 개념·인지·정의 등이 법에
해당합니다.
중생이 불과를 성취하려면 당연히 이 세상의 만사 만물에 연연하지 말고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보살이 안으로는 육근을 버리고 밖으로는 육진을 버려야 하되 마음이 상에 집착한
상태에서 버려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득실의 고뇌가 생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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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如,我过去喜欢画画,喜欢写诗,曾梦想当一位画家、诗人。当我修证佛法后,全部的时间、精力用来修禅定、读经典等,我认为我舍去了自己的爱好,是一种为了求道而牺牲了很多世间的名利、娱乐。如果像我这样的认知,菩萨就活得像烈士,因为有牺牲,这叫“住法布施”。
예를 들어 저는 과거에 그림 그리기와 시 쓰기를 좋아하여 화가나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
습니다. 불법을 수행하게 된 후 모든 시간과 정력을 선정 수련과 경전 읽는데 쏟아부어 저
는 저 자신의 취미를 포기했다고 여겼습니다. 즉 도를 구하기 위해 속세의 많은 명예와 이
익, 취미를 희생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저와 같은 이런 인지가 있다면 보살은 마치
열사처럼 사는 셈이 됩니다. 희생이 있다고 여기니까요. 이를 일러 ‘법에 머물러 보시한다’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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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比如,有的人非常喜欢吃肉,为了气脉清净或培养慈悲心而开始吃素食,这等于这个人为了修行舍离布施了肉食。如果他“住味布施”,他就会觉得他舍去了美味,那现在的素食在口中也开始味同嚼蜡。其实他认为的美味,在有些人眼中只不过是洒满了种种香料的动物腐尸,尤其在天人眼中恶臭不堪。如果这位行者了知“美味”不过是自我的觉受和认知,知道美味在本质上并非是他认为的那样,他就不会觉得布施了美食,吃素有多么的烦恼或了不起,这就是“不住味布施”。
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고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기맥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나 혹은
자비심을 키우기 위해 채식을 시작했다고 합시다. 이는 이 사람이 수행을 위해 육식을 보시
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그가 ‘맛에 머물러 보시’한다면 그는 자신이 맛있는 음식을 포
기했다고 느껴 먹고 있는 채식도 맛없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사실 그가 맛있다고 여기는 음
식이 어떤 이들의 눈에는 각종 향신료를 가득 뿌린 동물시체에 불과합니다. 특히 천인이 보
기에는 악취가 진동하여 견딜 수 없을 정도지요.
만약 이 수행자가 이 ‘맛있는 음식’이 자아의 감각과 인지일 뿐이며, 맛있는 음식이 본질
적으로 그가 인지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맛있는 음식을 보시하였다고
여기지 않아 채식하는 것을 아주 큰 고민거리나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맛에 머물지 않는 보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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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比如,你喜欢一位女子,喜欢看她的外表、喜欢她的声音、喜欢闻她身上洒的香水、喜欢她光滑柔软的皮肤等等。如果有一天,你为了成道必须舍离这段情时,如果你认为你认知、体验、觉受到的一切真实不虚,那你就是“住色、声、香、味、法布施”。你一定会非常痛苦,你会觉得这是一种牺牲或失去。其实,你拥有的美女真的是这样吗?俗话说“情人眼中才出西施”,只因为你着相了,动了情欲,才会觉得这个女人寸步不能舍离。如果有一天你移情别恋,这个女人就在你眼中变得丑陋不堪,你巴不得她离你远一点。
또 예를 들어, 그대가 한 여인을 좋아하여 그녀의 외모와 목소리, 그녀 몸에 뿌린 향수
냄새, 그녀의 매끈매끈한 피부 등을 좋아한다고 합시다. 만약 어느 날, 성도를 위해서 반드
시 이 감정을 버려야 할 때, 만약 그대가 인지하고 느끼고 체험한 이 모든 것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그대는 바로 ‘색·성·향·미·촉·법에 머물면서 보시하는 것’이 됩니
다. 그대는 분명 아주 고통스러워 이것을 희생이나 상실로 느낄 것입니다.
사실, 그대가 사모하고 있는 미녀가 진짜 그러할까요? 속담에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하듯, 그대가 다만 상에 집착하고 정욕이 동했기에 이 여인 옆을 잠시라도 떠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만약 어느 하루 그대 마음이 변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이 여인은 그대
눈에 추하게 비추어져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기를 바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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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不管你认为舍离了你喜欢的东西,或者是讨厌的东西,都是“住相舍离”。真相是:并非你真的舍离放下了什么,你认知的那些相都是虚妄的。其实,在佛法中修布施、修舍离,最终的目的只是为了让你通过舍而能从这些人、事、物中解脱,不让三界六道的这一切困住你。如果你能了知一切相的虚妄,不住相舍离、布施,你的心就会在布施中安住,也才能把布施的功德汇归于空性。
그러므로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버렸든 혹은 싫어하는 것을 버렸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모두 ‘상에 머문 상태에서 버리고 떠난 것’입니다. 진실은 그대가 진정으로 그 무언가를 버
리거나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그대가 인지한 그 상들이 모두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불법에서 보시를 수행하고 버림을 수행하는 최종 목적은 ‘버림’을 통해 이러한 사람·일·사물
로부터 해탈하여 삼계육도의 모든 것이 그대를 속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일체 상이 모두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아 상에 머물지 않고 버리고 떠나거나 보시한다면 그
대의 마음은 보시에 안주할 수 있어 보시의 공덕은 공성으로 합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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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在这一品中还说,如果菩萨不住相布施,所得福德像四维上下的虚空不可思量。为什么修布施,功德会这么大呢?因为行者不住色、声、香、味、触、法布施,等于外舍六尘而无尘相,也等于内舍六根而无我相。在佛学中,六根与六尘结合,形成十八界。如果六根空、六尘空,那十八界空。这样,行者通过不住相布施已安住在了《心经》中说的,大菩萨的“无眼耳鼻舌身意,无色声香味触法,无眼界,乃至无意识界”的境界,证入人空、法空,基本上出离了三界六道,最后破法身执,即可进入佛的真空境界了。所以,功德当然很大,不可思议。
부처님께서는 이 품에서 또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 그가 얻는 복덕
은 마치 사방과 상하의 허공만큼 헤아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보시를 수행하면 공
덕이 이토록 클까요? 수행자가 색·성·향·미·촉·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것은, 밖으로는 육
진을 버려 티끌 상[塵相]이 없는 것과 같고, 안으로는 육근을 버려 아상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육근과 육진이 결합하여 십팔계를 형성한다고 합니다. 만약 육근이 공하고 육
진이 공하면 십팔계 또한 공합니다. 이러하면 수행자는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로 인해 이미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대보살의 경지, 즉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
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는’ 경계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공
(人空)과 법공(法空)을 증득하여 기본적으로는 삼계육도를 벗어나게 되며 마지막에 법신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기만 하면 곧 부처님의 진공 경계에 진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덕은
당연히 아주 크고 불가사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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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人间,纵观一位菩萨的修道过程,世间的五欲之乐无法尽情享受,名利没有时间去获取,而且还要不断地积功德、无所求地布施一切。如果对红尘万法,不能安住在“毕竟空”的见地上,那所有的“布施”和“舍离”都是付出、奉献和牺牲,菩萨就很久无法尝到解脱的喜悦,在菩萨道上走得会异常艰难。故无空性正见,不是菩萨的真正解脱道。所以佛说:“不应住于世界万法实有这样的角度去行布施,去出离。”
인간 세상에서 한 보살의 수도과정을 둘러보면 세간의 오욕락을 만끽할 수 없고 명예와
이익을 얻을 시간도 없는 데다가 부단히 공덕을 쌓고 바라는 것 없이 모든 것을 보시해야
합니다. 만약 속세의 만법이 ‘필경 공하다[畢竟空]’고 하는 견지에 안주하지 못하면 모든
‘보시’와 ‘버리고 떠남[舍離]’은 단순히 봉사와 공헌, 희생이기에 보살은 오랜 세월 동안 해
탈의 희열을 맛보지 못하고, 보살도에서 걷는 길이 몹시 힘겨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
로 공성정견(空性正見)이 없는 보살도는 보살의 진정한 해탈의 길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
님께서는 세상 만법이 실재한다는 관점에 머물러서 보시하고 출리(出離)를 행해서는 안 된
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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当然,世俗之人出离时还贪恋红尘的一切,从而有得失的烦恼。而阿罗汉们正好相反,是厌离这世界的一切。阿罗汉认为六尘、一切娱乐都应舍弃,都是障道的。如阿罗汉认为钱是毒蛇,会令人贪婪。但是在菩萨道上,在舍去钱财时,阿罗汉必须明白钱“毕竟空”。它叫钱、叫毒蛇、叫贪婪,都是名相,厌恶、喜欢都是着相。众生如果着相去布施,所行的布施也是人间善业,只能得善报,不能出轮回。而菩萨的不住相布施才能布施后无所求,不求回报理解,不希求功德和果位,才能心不被境转,没有得失的烦恼,也才能尽快回归本来圆满、无得无失的自性真空。
물론 속세의 인간이 벗어나려고 할 때, 세속의 모든 것을 여전히 탐착하고 있으므로 득실
의 번뇌가 있을 것입니다. 반면, 아라한은 정반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싫어서 떠나려고
합니다. 아라한은 육진과 일체 오락은 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에 마땅히 모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라한이 돈을 탐욕을 일으키게 하는 독사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
다. 그러나 보살도에서 재물을 포기할 때 아라한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돈은
필경 공하다[畢竟空]’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을 돈이라 부르든, 독사라 부르든, 탐욕이라 부르든 그것은 단지 명상(名相)일 뿐이며,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모두 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만약 상에 집착해서 보
시한다면 그 모든 보시는 인간 세상의 선업이 되어 선한 과보만 얻게 될 뿐 윤회에서 해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에 머물지 않는 보살의 보시는 보시한 후에 바라는 것이 없고
나아가 보답이나 이해를 바라지 않으며, 공덕과 과위를 희구하지 않으며, 또한 경계에 휘둘
리지 않고 득실의 번뇌가 없으므로 본래 원만하고 득실이 없는 자성의 진공으로 조속히 회
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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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谈完普度众生,就开始谈菩萨的出离。在佛法的整个修证中,很重视出离心。因为当一个人发心成就佛果时,首先应生起出离三界六道、出离轮回之心。但因刚发心众生有习气、欲望,所以舍离人世界喜欢、执着的一切时,心中都会有贪爱,粘连不舍。但如果仍贪恋三界六道的幻境,就会被困在这些时空中,无法回归生命的源头,无法成佛。所以大菩萨了知诸相虚妄,要能“不住相布施一切”,这是大菩萨出离心的基点,是菩萨的真正出离。
부처님께서 중생을 널리 제도해야 함을 말씀하시고 나서 보살의 떠남[出離]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불법의 전체 수행 과정에서 출리심(出離心)을 아주 중요시됩니다. 왜냐하
면, 한 사람이 불과를 구하고자 발심하였을 때 먼저 삼계육도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윤
회에서 해탈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갓 발심한 중생은 습기
와 욕망으로 말미암아 인간 세상에서 좋아하고 집착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할 때가 되면 마
음속에 탐이 나고 애착이 가서 그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만약 삼계육도의 환상 경계를 여전히 탐하고 미련이 있다면 이런 시공간에 갇혀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없어 성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보살은 모든 상이 허망하다는 것
을 깨달아 ‘상에 머물지 않고 일체를 보시’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보살이 출리심의 기반이며
보살의 진정한 출리(出離)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