標題:金剛經 講義 금강경 강의
編號:05
日期: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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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품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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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告须菩提:“诸菩萨摩诃萨应如是降伏其心!所有一切众生之类:若卵生、若胎生、若湿生、若化生;若有色、若无色;若有想、若无想、若非有想非无想,我皆令入无余涅槃而灭度之。如是灭度无量无数无边众生,实无众生得灭度者。何以故?须菩提!若菩萨有我相、人相、众生相、寿者相,即非菩萨。”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한다. 모든 중생의 종류, 즉 난생·태생·습생·화생과 유색·무색과 유상·무상·비유상비무상을 내가 모두 완전한 열반
에 들게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없는 중생을 제도하였으나 실로 제도를 얻은
중생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보살에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다
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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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讲这一品前,我们先解释几个概念。经中佛提到:卵生、胎生、湿生、化生、有色、无色、有想、无想、非有想、非无想,这是佛对三界一切众生各种生命形态的分类。卵生、胎生、湿生、化生,是欲界生命的四种形态:“卵生”就是从卵中孵化出来的生命,如鸡、鸭等;“胎生”就是住母胎孕育而成的生命,比如人就是胎生;“湿生”是以潮湿因缘而生的生命,如地缝中或水中的有些小虫;“化生”是靠业力凭空化生,在欲界的天界生命就是化生的。“有色”指色界生命,只有色身,无情欲;“无色”是指无色界的生命,只有意识,无情欲和色身;“有想”“无想”、“非有想”、“非无想”是对无色界生命更细致的分类。“有想”是指有思维活动。“无想”是指思维活动已经停止,但也不像木石。非有想非无想,是指思维活动虽停止,不再有思想,但可能随时会想的一种生命状态,就是说有一种想的动势。佛经中说,三界这些生命形态虽然存在形式千差万别,但却有共同的现象:都在生灭轮回中,不能自由解脱。而他们也有共同一样的本性:本性都是佛,一切具足,不生不灭。
이 품을 강의하기 전에, 먼저 몇 가지 개념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전에서 부처님께
서 언급하신 난생·태생·습생·화생·유색·무색·유상·무상·비유상·비무상은 부처님께서 삼계 모든
중생의 다양한 생명 형태에 대하여 나누신 분류입니다.
난생·태생·습생·화생은 욕계 생명의 네 가지 형태입니다. ‘난생’은 알에서 부화한 생명으
로, 닭이나 오리 같은 것들입니다. ‘태생’은 모태에서 태어난 생명으로, 인간이 바로 태생입
니다. ‘습생’은 습한 인연으로 태어난 생명으로, 땅속의 틈새나 혹은 수중의 작은 벌레 등입
니다. ‘화생’은 업력에 의해 홀연히 태어난 생명으로, 욕계의 천상계 생명이 바로 화생입니
다. ‘유색’은 색계 생명을 가리키는데 오직 색신(色身)만 있고 정욕은 없습니다. ‘무색’은 무색
계의 생명을 가리키는데 오직 의식만 있고 정욕과 색신이 없습니다. ‘유상’·‘무상’·‘비유상’·
‘비무상’은 무색계 생명에 대한 더 세분된 분류입니다. ‘유상’은 사유 활동이 있음을 가리키
고, ‘무상’은 사유 활동은 이미 정지되었으나 나무나 돌과는 같지 않은 것입니다. ‘비유상’·
‘비무상’은 사유 활동이 정지되어 더 이상 생각은 없지만 언제든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생
명 상태, 즉 생각하려고 하는 추세가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불경에서는 삼계의 이러한 생명체가 비록 존재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지만 그들에게는 모
두 공통된 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생멸하는 윤회 속에 있어 자유로이 해탈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똑같은 본성이 있으니, 그 본성은 다름 아닌 부
처이며 모든 것을 원만히 갖추고 있고 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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经中还提到了两个概念:一个是“涅槃”。“涅槃”是梵文的音译。在佛法中,将证入不生不灭的解脱境界称“涅槃”。“涅槃”分为“有余涅槃”和“无余涅槃”,一般将阿罗汉的涅槃境界称“有余涅槃”,因为四果阿罗汉虽然能暂时住在定中不进入生死轮回很长时间,但因缘具足,仍会出定,重入轮回,所以解脱不究竟,称“有余涅槃”。佛的涅槃境界彻底从轮回中解脱,生命完全从生灭染污的假相中解脱出来,获得不生不灭的永恒的大自在,所以这种涅槃叫“无余涅槃”。
경전에서는 또한 두 가지 개념을 언급했습니다. 하나는 ‘열반’입니다. ‘열반’은 산스크리트
어의 음역입니다. 불법에서는 불생불멸의 해탈 경계를 ‘열반’이라고 합니다. ‘열반’은 ‘무여열
반’과 ‘유여열반’으로 나누는데 일반적으로 아라한의 열반 경계를 ‘유여열반’이라고 합니다. 사과 아라한은 비록 일시적으로 선정에 머물러 오랜 시간 동안 생사윤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인연이 구족되면 여전히 선정에서 나와 다시 윤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궁극적인 해
탈은 아니어서 ‘유여열반’이라 부릅니다. 반면 부처님의 열반 경계는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
나 생명이 생멸로 오염된 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불생불멸의 영원한 대 자유를 얻은 것이
므로 이런 열반을 완전한 열반 즉 ‘무여열반’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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经中还提到了,“我相”、“人相”、“众生相”、“寿者相”。那什么是“我相”呢?每个人都有一个“自我”的定义,如眼、耳、鼻、舌、身意组成,而且与别人不同。我们的心识虽投胎在人道,但每个人都具备六道的意识形态。比如:我们瞋恨、嫉妒时,心就在阿修罗道;渴求圣洁、纯净时心就在天人道;当我们体验极端的苦难时,心在地狱道。但是如果你把自己定义在任何一道都是错的。真相是——你是佛,可以自在无碍地示现种种相。但因为自己的执着和不懂真理,我们便被自己所造的种种业力牵引,陷在不同的生命意识状态中,无法自拔。人对自我、身心内外的定义、认知、体验、觉受、取舍,都是“我相”。人认为“自我”实有,其实“自我”是虚妄的。
경전에서는 또한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상’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모두 ‘나’에 대한 자체의 정의가 있습니다. 예
를 들면 눈·귀·코·혀·몸·뜻으로 이루어졌고 다른 사람의 그것과 구별됩니다. 우리의 심식(心
識)은 비록 인간 세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나긴 했으나 사람마다 모두 육도(六道)의 의식형태
를 갖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성내고 원망하고 질투할 때 우리의 마음은 아수라에 있고, 거룩하고
고결한 것을 추구할 때 마음은 천인에 있으며, 우리가 극심한 고난을 겪을 때 마음은 지옥
에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자신을 어느 한 특정적인 궤도에 국한해 정의를 내리면 그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진실은 바로 ‘우리는 부처이며 자유자재로 온갖 상을 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착과 진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지은 여러 가지
업력에 끌려서, 서로 다른 생명의 의식 상태에 갇혀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아와 심신 안팎에 대한 정의·인지·체험·느낌 그리고 취하고 버리는 선택 이 모든
것이 바로 ‘아상’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실재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이 ‘나’는 허망한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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那什么是“人相”呢?就是人对他人的身心内外的一切定义、认知、体验等。认为实有那样的一个人存在,从而生出喜好、厌恶、取舍或占有的情绪。“众生相”,经中说三界六道有种种不同相貌和意识形态的众生,都处在生灭轮回中经历苦厄,不能回归本有的佛性。“寿者相”,“寿”是从生到死的时间。但人们都喜欢长生不老,不愿死亡,这即“寿者相”。其实着“寿者相”,也是着万法的生灭相。
그럼 ‘인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타인의 심신 안팎에 대해 내리는 모든 정의·인
지·체험 등을 말합니다. 그러한 타인이 실재한다고 여겨, 그로 인해 좋아하고 싫어하거나 취
하고 버리거나 혹은 소유하려는 감정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상’에 대해 경전에서는, 삼계육도에 서로 다른 모습과 의식형태를 가진 중생들이 존
재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생멸하는 윤회속에서 고초를 겪으면서 본래의 불성으로 회
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자상’에서 ‘수(壽)’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불로장생을 바라며 죽음을 원치 않는데, 이것이 바로 ‘수자상’입니다. 사실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은 만법의 생멸상(生滅相)에 집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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这一品的大意是:佛陀告诉须菩提,所有的大菩萨要成就无上正等正觉的佛果,首先要生起大慈悲心,发愿普度三界众生。不管是卵生的、胎生的、湿生的、化生的、有色、无色、有想、无想、非有想、非无想,都要发愿度脱他们,令他们进入佛不生不灭的涅槃境界,从生死轮回中解脱。但是,即使像这样度脱了无量无边的众生,菩萨在见地上要这样认为:并无一位众生是通过我的救度成佛了。佛说,为什么这样说呢?佛告诉须菩提,一位真正行菩萨道的菩萨,就不能有我、你、他实有的分别,也不能有众生的种种差异相,不能有万法的生灭相,希求长生不老
이 품의 대략적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대보살이 무상정등정각의 불과를 성취하려면 우선 큰 자비심을 내서 삼계의 중생을
두루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 난생·태생·습생·화생·유색·무색·유상·무상·비유상·비
무상이든 막론하고 그들을 제도하여 그들을 생멸이 없는 부처님의 열반 경지에 진입시켜 생
사윤회에서 해탈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 설령 이렇게 한량없고 끝없는 중생을 해탈
시켰다 하더라도 보살의 견지에서는 ‘나의 제도에 의해 부처가 된 중생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진정 보살도를 행하는 보
살이라면 나, 너, 그 이 삼자에 대한 실제적인 분별이 없어야 하고, 중생의 여러 가지 차별
상도 없어야 하며, 만법의 생멸상이 있음으로 인해 장생불로를 희구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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为什么佛一开始就谈普度众生的问题?因为当一个人发心成佛时,应知道自己是要回归生命的源头。而站在生命的源头看,我们的心包含宇宙一切,每个人的心都是宇宙一切有情的全息缩影。故当一个人发愿成就佛果的同时,也意味着是在发愿要普度宇宙一切有情众生。由此,弘扬佛法、普度众生便成为每位大菩萨的使命。所以我们也应知道一位菩萨在人间的使命不是做慈善事业,而是令众生明了生命的真相、度众生出轮回苦海,勿以善小而不为只是每位菩萨成道必具备的品质。但当菩萨发心普度众生时,首先不应有好恶选择,喜欢的就度,不喜欢的就不度,应有度尽三界的愿力和平等心。并且不能有你、我、他、众生实有的认知,否则菩萨的苦难和烦恼就来临了。在根本的见地上你一定要明白,你与众生本性都是佛,众生自性本来不生不灭,本来就涅槃寂静,并不是有个你能令他拥有这样的本质。菩萨对众生,如梦中的药对病,梦醒后药与病都是虚妄不实的。真空中没有菩萨,也无众生。如菩萨的见地明确,那么在度众生时就不会去希求回报和理解,也不会被众生表现出来的种种状态迷惑,从而心生烦恼,无法安住在如如不动的境界上。
왜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중생을 두루 제도하는 문제를 논하셨을까요? 누군가 성불하고
자 발심하였다면, 자신은 생명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응당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에 서서 보면, 우리의 마음은 우주의 일체를 포함하고 있기에 매 사
람의 마음은 우주 일체 유정(有情) 생명체의 홀로그램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불과를 성
취하겠다고 발원한 것은 동시에 우주의 모든 유정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발원한 것을 의미하
기도 합니다. 따라서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두루 제도하는 것은 모든 보살의 사명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속세에서 보살의 사명은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에게 생
명의 진실을 알게 하고 중생을 윤회의 고해에서 제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아주
작은 선일지라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보살이 도를
이루는데 반드시 갖추어야 할 품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보살이 중생을 두루 제도하고자 발심하였을 때, 호불호 선택이 작동하여 좋아하는
사람은 제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제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삼계의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다는 원력과 평등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너, 나, 그 그리고 모든 중생이 실제
로 존재한다는 인지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안 그러면 보살에게 고난과 번뇌가 닥쳐올 것입
니다. 근본적인 견지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과 중생의 본성은 모두 부처이고
중생의 자성은 원래 생멸하지 않으며, 본래 고요한 열반이기에 여러분이 그들로 하여금 이
런 본질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살이 중생을 대하는 것은 마치 꿈속의 약과 질병 같은 것이어서, 꿈에서 깨어나면 약과
질병은 모두 허망한 것이 됩니다. 진정한 공 즉 진공(真空)에는 보살도 없고 중생도 없습니
다. 가령 보살의 견지가 명확하다면, 중생을 제도할 때 보답이나 이해를 희구하지 않을 것
이며, 중생이 보여주는 온갖 상태에 미혹되어 마음에 번뇌를 일으켜 여여부동의 경계에 안
주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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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经当我刚读《金刚经》时,读完这一品时,我抬头思维想:这是佛要我们发愿普度众生。那个时候正好对面墙上有一只苍蝇,我想苍蝇是卵生的,佛说,我应发愿度这只卵生的苍蝇入无余涅槃而灭度之。我盯着苍蝇,心想:如果我此时发愿度这只苍蝇成道,天啊,那需要多久啊!我马上就绝望了。忽然我明白了,我着了苍蝇的相。如果现在我心中有自我与苍蝇实有的相,那我不仅永远无法度苍蝇入涅槃,而且我自己也会被这个愿力带入苦海溺死。如果着众生相,我将生生世世被这个愿力带入六道轮回的苦难之中,众生平等,都有与佛一样圆满的空性。苍蝇与我都只是真空的示现,当我拥有这样的见地时,墙上的苍蝇虽仍是一只听不懂人话的虫子,但我的
心却安住了,不再为这个发愿担心、忐忑不安了。
오래전 제가 처음 금강경을 읽을 때, 이 품을 다 읽고 나서 고개를 들고 생각에 잠긴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중생을 두루 제도하라는 서원을 세우라고 하신 것인데….’ 그때 마침 맞은편 벽에 파리 한 마리가 있었고, 저는 속으로 ‘파리는 난생인데 부처님 말
씀대로라면, 나는 이 난생인 파리를 무여열반으로 제도하게끔 발원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리를 빤히 쳐다보던 저는 ‘만약 지금 내가 이 파리를 깨닫게 하겠다고 발원
한다면, 맙소사, 얼마나 오래 걸릴까!’라는 생각에 곧바로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문
득 제가 파리의 상(相)에 집착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지금 제 마음속에 저와 파리가 실재한다는 상이 있다면 저는 영원히 그 파리를 열반
으로 제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저 자신도 이 원력에 휘둘려 고해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익사할 것입니다. 중생상에 집착한다면 저는 세세생생 이 원력에 이끌려 육도윤회의 고난
속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중생은 평등하며 모두 부처와 같은 원만한 공성을 지니고 있기에
파리와 저는 모두 진공이 모습을 나타낸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자 벽에 붙어 있는 파리는
비록 여전히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벌레이긴 하나 저의 마음은 안주하게 되었고 더 이
상 이 서원 때문에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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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读了这一品,我们应该懂的事实是——每位众生本质上只能做佛,做不了其他东西。我、人、众生、寿者只是我们头脑的分别,菩萨应不着相发愿才能从诸相的困缚中解脱。否则,普度众生这个愿力只能让你踏上苦难的历程,你也无法真正从在人间普度众生的有为法中获得无上正等正觉。
따라서 이 품을 읽고 난 후 우리가 응당 알아야 할 사실은, 모든 중생은 본질적으로 오직
부처가 될 수밖에 없으며 다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我), 인(人), 중생(衆生),
수자(壽者)는 다만 우리 머릿속의 분별일 뿐이므로 보살은 마땅히 상에 대한 집착이 없이
발원해야만 모든 상의 굴레에서 해탈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생을 널리 제도하겠
다는 이 원력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고난의 여정을 걷게 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 또한 인간
세상에서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는 유위법(有爲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무상정등정각을 얻
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