標題:金剛經 講義 금강경 강의
編號:10
日期: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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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품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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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须菩提!于意云何?若人满三千大千世界七宝以用布施,是人所得福德,宁为多不?”须菩提言:“甚多,世尊!何以故?是福德即非福德性,是故如来说福德多。”“若复有人,于此经中受持,乃至四句偈等,为他人说,其福胜彼。何以故?须菩提!一切诸佛,及诸佛阿耨多罗三藐三菩提法,皆从此经出。须菩提!所谓佛法者,即非佛法。”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보
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이 진정 많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말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곧 복덕의 본성이 아닌 까닭에 여래
께서 복덕이 많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며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
면, 이 복이 저 복보다 더 뛰어나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든 부처와 모든 부처의 아뇩
다라삼먁삼보리법이 모두 이 경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른바 불법이란 것
은 곧 불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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这一品的大意是佛问须菩提:“假如现在有一个人,拿满三千大千世界这样多的珍宝来做布施,他由此得到的福德、善报多不多呢?”须菩提回答说:“世尊,这个人的福德、善报非常多。我为什么这样认为呢?因为我认为这个人做的福德是世间有相福德,可以由此获得善报,所以如来才说得福德多。但如果此人能施者空、施物空、受者空这样布施,所得福德即如虚空一样不可思量,叫福德性。”
이 품의 대체적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물으셨습니다.
“가령 지금 어떤 한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만큼 많은 귀한 보물을 갖고 보시를 한다면 그가
이로 얻는 복덕과 선한 과보는 많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의 복덕과 선한 과보는 아주 많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하면, 이 사람이 행한 복덕은 세간의 상(相)이 있는 복덕이기에 이로부터 선한 과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여래께서는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사람이 보시하
는 이도 공하고, 보시하는 물건도 공하고, 받는 이도 공하다고 생각하면서 보시했다면 그가
얻는 복덕은 허공과 같이 헤아릴 수 없는데, 이를 복덕의 본성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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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此,须菩提认为住相布施所得福德才可以用“多少”算计。而不住相布施,福德也空,行者无所执着、无所求,所有福德即可契入自性实相,汇归空性。福德本性空,所以叫福德性,不可以用“多少”来说。
여기에서 수보리는 상에 머물면서 행한 보시인 경우라야만 그 얻는 복덕을 ‘많고 적음’으
로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는 복덕도 공하고 수행자가
집착하는 바도 없고 바라는 바도 없으므로, 모든 복덕은 곧 자성의 실상으로 들어가 공성으
로 회귀합니다. 복덕의 본성은 공(空)이기 때문에 이를 복덕성(福德性)이라 부릅니다. 따라
서 ‘많고 적음’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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因在《金刚经》的第四品中,佛曾谈到应不住相布施的正知见,所以须菩提在此如此解释,以此来说明自己对佛言说的领悟。但接下来的对话中如来并未对须菩提的“福德性”、“福德相”这两个概念作任何评论,因为在如来的境界中见相即见性,色空不二。只是因众生着相,如来说不应着相布施,但施者本空,所施一切也本空。众生即使有所住、有所执着,但在佛的境界中也是非住,也无可住之人、无可住之物,万物本自清净。但须菩提这样讲也并没有错。
금강경 제4품에서 부처님께서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한다는 정지견을 말씀하셨습
니다. 그러기에 수보리는 자신이 부처님 말씀을 이해했음을 보이기 위해 여기서 이렇게 설
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화에서 여래는 수보리의 ‘복덕성’, ‘복덕상’ 이 두 개념에
대하여 그 어떠한 평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경계에서는 상을 보는 것이
곧 본성을 보는 것[見相即見性] 즉 색공불이(色空不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생이 상에 집착하기에 여래께서는 상에 집착하지 말고 보시해야 함을 말씀하셨지
만 보시하는 자도 원래 공하고 보시하는 모든 것도 본래 공합니다. 중생이 설령 머무는 데
가 있고 집착하는 바가 있더라도 부처의 경계에서는 여전히 머무는 데가 없고 머무는 사람
도, 머무는 물건도 없이 만물은 본래 청정합니다. 그러나 수보리가 이렇게 말해도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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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陀接着说:“如果有人能够理解这本经文的意思,并依此修证,甚至只是将其中的四句偈颂为他人解说,那么他所得的福德超过前面那个人。为什么这么说?须菩提,十方三世一切诸佛以及诸佛成就无上正等正觉的法门,都从此经出。”在此,佛陀是在强调本经中的见地对修学人的重要。学习修证这部经不仅可获得世间法中的很大福德,而且所有的佛都是按此经中的一切见地、方法,去做、去修证,以此成就了无上正等正觉。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이 경문의 뜻을 이해하여 이를 따라 수행하고 증득하며 더 나아가 그중
의 사구게라도 타인을 위해 해설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은 앞의 그 사람을 뛰어넘을
것이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수보리여, 시방 삼세 모든 부처와 모든 부처가 성취한 무상정
등정각의 법문이 모두 이 경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본 경전의 견지가 수행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계십니
다. 왜냐하면 이 경전을 배우고 수행하면 비단 세간법에서 가장 큰 복덕을 얻을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모든 부처님이 또한 이 경전의 모든 견지와 방법에 따라서 행하고 수행 증득함으
로써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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当佛陀在强调了这本经的重要后,马上又重申前边说过的见地,提醒须菩提,其实也是在提醒还一会儿清醒一会儿迷糊的众弟子。原文是:“所谓佛法者,即非佛法。”意思是说:“我刚才说这部经非常重要。虽然这样说,但你们可不能着相,不能执着这就是佛法。”佛所有的说法几乎都是对机施教,即佛会看着弟子们心中的疑惑与盲区,层层递进、左右清扫,令弟子们随佛的层层开示,破层层知见、除层层执着。随所有相的破除,弟子们的心中像拿掉了层层滤镜,终于一点一点看清实相。而且,佛在《金刚经》中的开示就像是一个人,倒退着打扫弟子们的心地,层层清扫,而且边走边扫去了自己上一步留下的脚印。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후, 곧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견지를 다시 언
급하시며 수보리를 일깨워주셨습니다. 사실 이는 한동안은 깨어 있다가 한동안은 정신이 혼
미해지는 여러 제자를 일깨워주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원문은 “이른바 불법이라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다.”인데, 이는 “내가 방금, 이 경전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비록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대들이 상에 집착하여 이것이야말로 불법이라고 집착해서도 안 된다.”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설법은 거의 모두 대기설법, 즉 상대방의 근기에 근거하여 법을 설하는 것
인지라, 부처님께서는 제자들 마음속의 의혹과 맹점을 보시고 단계적으로 나아가면서 좌우
를 청소하여, 제자들이 부처님의 설법에 따라 겹겹이 쌓인 지견을 깨뜨리고 겹겹이 쌓인 집
착을 타파하게 하십니다. 모든 상이 깨어짐에 따라, 제자들의 마음은 겹겹의 필터를 벗겨낸
것처럼 그들은 마침내 그 실상을 조금씩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하신 가르침은 마치 뒷걸음질 치며 제자들의 마음을 청소하는 것과 같습니다. 층층이 청소
하며 나아가는 동시에 자신이 앞서 남긴 발자국까지 쓸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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到最后,在众生心田留下了真空境界。所以,佛在说完此经的功德与重要后,马上又重新扫去了刚才说法可能留在一些弟子心中的执着,重提不要执着法相,让弟子们重新安住在不着所有相的真空境界中。显然,弟子们心中的执着仍未破完,所以佛接下来仍在不断开示,清扫弟子们的心地。
그리하여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중생의 마음속에 진공 경계가 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서는 이 경전의 공덕과 중요성을 모두 말씀하신 뒤 바로 전에 한 설법으로 인해 제자들의
마음속에 남아있을지 모를 집착을 쓸어버리시고는, 곧 다시 법상에 집착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시어 제자들이 모든 상에 집착하지 않는 진공 경계에 다시 안주하게 하십니다. 제자
들 마음속의 집착이 여전히 다 깨지지 않은 것은 확실하므로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끊임없이
설법하여 제자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청소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