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품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제7품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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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这一品中,佛开始反问须菩提。佛这次说法源自于须菩提提的问题,即:众生要发心求取无上正等正觉的佛果,应怎么样修,才能令心安住?没有烦恼、障碍,迅速成就?佛讲了几点,如:要不着相行愿,不住相布施、舍离,要不着身相见性,而且一切无定相,佛法也无定法,不要执着佛相和佛说的法。

이 품에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반문하셨는데 이번 설법은 수보리의 질문에서 비롯되
었습니다. 즉 중생이 무상정등정각의 불과를 구하고자 발심했다면 어떻게 수행해야만 마음
을 안주시키고 번뇌와 장애가 없이 신속하게 성취할 수 있을지를 물었지요. 부처님께서는
몇 가지 요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상에 집착하지 않고 서원을 행하고, 상에 머무
르지 않고 보시하고 떠나며, 몸의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자성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
든 것은 정해진 상이 없으며, 불법 또한 정해진 법이 없기에 부처의 상과 부처의 설법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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弟子们听到这儿,应该在头脑中有一条获取佛果的正确途径了,但也许又增加了“有果位可得”、“有法可得”之心,还未马上放下一切,立刻顿悟性空之理。故现在佛突然反问须菩提,当然也是在问在场的众弟子:你们心中要成就佛果,但你们认为如来真有佛果可得吗?我刚才或平时真有定法可说吗?须菩提在大弟子中号称“解空第一”,他当然明白佛这样问的用意。马上说:从我对佛所说一切的理解,并无一个东西叫无上正等正觉的佛果,也并无一种定法叫佛法是如来每次要讲的。如来所说的一切道理、法门,都是对应大家的执着而做的方便开示,如医生因不同的病开不同的药。故佛法并无定法,众生也不应该执取哪一种法是佛法。最高真理本不可言说,众
生不再着相,放下一切执着,回归本源就是。如来所有言说只是指引众生回归的航标,众生不应以为“有法可得”,也不应否定佛法,认为没有正知见的指导,不需要修证就能回归。

제자들이 여기까지 듣고 나면 머릿속에 불과를 획득하는 올바른 경로가 그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얻을 수 있는 과위가 있다’, ‘얻을 수 있는 법이 있다’는 마음이 더해져, 즉시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공성의 이치를 당장 돈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갑자기 수보리에게, 물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대들이 마음속으로 불과를 성취하려고 하는데, 여래에게 진짜 얻을 수 있는 불과가 있
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방금 혹은 평소에 진짜로 정해진 법이 있어 이를 설한 것인가?”
수보리는 큰 제자 중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리는 만큼, 부처님께서 이렇게 물으신
의도를 잘 알아차리고는 즉시 말했습니다. “제가 부처님 말씀을 이해한 기반에서 말씀드리자면, 무상정등정각의 불과라 부를만한 실
체가 없으며, 불법이라 불리는 정해진 법이 있어 여래께서 매번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이치와 법문은 모두 사람들의 집착에 대응하여 펴신 방편일 뿐입
니다. 이는 의사가 환자의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에는 정
해진 법이 없으며, 중생 또한 그 어느 법이 불법이라고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최고의 진리
는 본래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중생이 더 이상 상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집착을 내려놓
으면 근원으로 회귀하게 됩니다. 여래의 모든 말씀은 다만 중생의 회귀를 인도하는 이정표
일 뿐이므로 중생이 ‘획득할 수 있는 법이 있다’고 여겨서도 안 되고, 또한 불법을 부정하면
서 올바른 지견의 가르침이 없이 수행과 증득을 하지 않고서도 회귀할 수 있다고 여겨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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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在此反问须菩提及众弟子的问题,也是在反问我们现在正在听经的同学,在你的心中,现在是否想着:我再修几年,就有一个法力无边的佛果可得到?现在正在获取佛法,就像你通过学习会获取一个博士文凭,或可以学习后掌握一门叫“无上正等正觉”的理论、道理?不是这样的。为什么无佛果可得,如来无定法可说呢?因为众生本来都是佛,众生现在所有的执着、轮回、求道之路都是做梦。

부처님께서는 이 지점에서 수보리와 여러 제자에게 반문하셨습니다. 이 또한 지금 경전을
듣고 있는 우리 도반들에게도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지금 ‘내가 이제
몇 년 더 수행하면 법력이 가없는 불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박사학위를 따듯이 공부
를 통해 불법을 얻고 무상정등정각이라는 이론과 기술에 숙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
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 얻을 불과가 존재하지 않고 여래께서 설할만한 정해진 법이 있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
생의 지금 모든 집착과 윤회, 깨달음을 구하는 과정조차 실은 다 꿈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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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如一个人躺在床上做梦,梦中他变成了猫、狗,或行了万里路,看了许多风景等。当他醒来时,他仍然是原来的他,他并未变成另一个人或什么东西。众生成佛也是这样的。众生放下执着后,心不再取相,马上从梦中醒来,自然回归到本有的佛性,并不是从众生变成了一位佛,或者从凡夫修出了一个佛果,因此成了佛。所以说如来最后无所得,也并无一个辉煌的、至高无上的佛果等着众生摘取。如来也无所说,众生不要执着佛法,如来是真空,真空没有文字、语言,眼、耳、鼻、舌、身、意,所以如来无所说。而每一位众生放下分别执着,回到真空境界后,就能明白曾经所有的执着、分别,甚至行菩萨道,布施、发愿等,都只是众生执着时的错误认知。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침대에 누워서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그는 고양이나 강아지가 되기
도 하고, 만 리 길을 걸어가면서 많은 풍경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깨어나면 그는 여전히
원래의 그 사람입니다. 그가 다른 사람이나 그 어떤 무엇으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중생이
성불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중생이 집착을 내려놓은 후, 마음에 더 이상 상을 취하지 않
으면 곧 꿈에서 깨어나 자연히 본래의 불성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중생에서 부처로 변하거
나 혹은 범부에서 불과를 수련해내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래는 마지막에는 얻는 것이 없고, 또한 휘황찬란하고 지고무상한 불과가 있어
여러분이 획득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래 또한 설한 바가 없으므
로 중생도 불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래는 진정한 공(空)입니다. 진공에는 문자도
언어도 없고 눈·귀·코·혀·몸·뜻도 없기에 여래는 설한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이 분
별과 집착을 내려놓고 진공의 경계에 돌아가고 나면, 이전의 모든 집착과 분별 심지어 행한
보살도와 보시 그리고 발원 등은 다만 중생이 집착할 때 가졌던 그릇된 인지임을 깨닫게 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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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如一个人眼睛病了,在空中看到一朵花。他不断地问佛:“这朵花怎么生出来的?开花需多久啊?为什么是红色的?为什么与别的花不同?什么时候会凋谢?”佛像医生,如果他与你谈论花的问题只是为了你能信任他,安住在他身边,治疗你的眼睛。等你病好了,花即不见了,你也不再较真说花是真的假的。别人说假的时候,你据理力争,或者脑中反复思量到底是实是虚,是真是假,你曾经与医生、其他人探讨的所有关于那朵花的问题,大家也可以心照不宣,一笑置之了。

이는 마치 눈병에 걸린 사람이 허공에서 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끊임없이 부처님
께 “이 꽃은 어떻게 생겨났어요? 꽃이 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왜 빨간색이에요?
왜 다른 꽃과 달라요? 언제 시드나요?”라고 물었다고 합시다. 부처님은 의사처럼 그 사람과
꽃에 관해 이야기하신다면 그것은 단지 그가 부처님을 신뢰하고 부처님 곁에 안주하게 하여
그가 눈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의 눈병이 나아져 그 꽃이 보이지 않게 되면 그는 더 이상 그 꽃의 실재 여부를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짜라고 말할 때 그는 이치를 따져가며 논쟁하거나 혹은 머릿
속에서 반복적으로 사실 여부와 진가를 고민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대신 이전에 의사나 혹
은 다른 사람과 토론했던 그 꽃에 관한 모든 문제를 온전히 속으로 이해하고 그저 웃어넘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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众生也本性是如来,本性是真空,之所以认为自己是众生,与佛不同,也如病眼看花,未见到真相。等众生放下执着,不着相时病就好了,众生相与佛相都如那朵花不见了。你与佛本来没有什么不同,你本来就是。那时,所有要成佛、要行菩萨道的这些概念、行为,都像医生与病人谈关于花的问题,目的只有一个你安住在佛的见地中,从所有执着、取舍,堆积成的众生梦中醒来。所以,如来并无所说,如众生执着佛的语言、文字,是无法回归真空之境的。

중생 또한 그 본성은 여래이고 진공입니다. 스스로 중생이라 여겨 부처님과 다르다고 분
별하는 것은 마치 병든 눈으로 꽃을 보는 것과 같아 진실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중생이 집
착을 내려놓고 상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 병은 나아져 중생상과 불보살상이 모두 그 꽃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중생과 부처는 본래 차이가 없으며, 중생은 본래 부처입니다. 그때 모든 성불하겠다, 보살
도를 행하겠다 하는 개념과 실천은 모두 의사가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그 꽃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목적은 오직 하나, 사람들이 부처의 견지에 안주하여 모든 집착과 취사
선택이 쌓여 빚어진 중생의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이 부처의 언
어와 문자에 집착한다면 결코 진공의 경계로 이를 수 없기에, 여래께서는 설한 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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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这一品中,当佛反问须菩提问题时,如果众生心性清净,可以看到佛一直安住在真空、无为的境界中开示,希望众生从迷梦中醒来,众生迷时,佛与佛法也是他梦境的一部分。所以,佛最后肯定了须菩提的回答,并说:这世界所有的圣贤其实都一样,他们在这个世界对众生说种种不同的法,显种种不同的相,其实在本质上他们都是一样的,都是立足在真空的境界中,示现出种种差别。原话是:“一切贤圣,皆以无为法而有差别”。在此处“无为法”并非是指相对“有为法”而建立的概念,指的是如来的万法本来不生不灭、清净无为的真空境界。

이 품에서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반문하실 때의 맥락은 이러합니다. 만약 중생의 마음이
청정하다면 부처님이 항상 진공과 무위의 경계에 안주하여 설법하시면서 중생이 미혹된 꿈
에서 깨어나시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중생이 미혹되었을 때는 부처와 불법
역시 중생의 꿈 일부분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에 수보리의 대답을
긍정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계의 모든 성현은 사실 같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중생에게 여러 가지 다른 법을
설하고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을 나타내지만, 사실 본질에서 그들은 모두 똑같으며 모두 진공
경계에 입각하여 여러 가지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모든 성현은 다 무위의 법으로써 차이가 있다.”입니다. 여기에서
‘무위법’은 ‘유위법’을 상대해서 세운 개념이 아니라, 여래의 만법이 본래 그렇게 생멸이 없
는, 청정 무위한 진공 경계임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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