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여! 항하에 있는 모든 모래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항하가 있다면 그대 생각
은 어떠한가? 이 모든 항하의 모래 수는 진정 많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항하들만 하여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하물며 그
모래이겠습니까?”
“수보리여! 내 이제 진실로 그대에게 이른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칠보로 저 모든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워 보시한다고 하면, 얻는 복이 많지 않겠
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의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
다면, 이 복덕이 저 복덕보다 더 클 것이다.”
“또한 수보리여! 그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사구게만이라도 설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곳은 모든 세간의 천인·인간·아수라가 모두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곳이 된다는 것을. 하물며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 전체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
고 있음이랴. 수보리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가장 높고, 가장 희유한 법을 성
취하게 되리라는 것을. 이 경전이 있는 곳은 곧 부처님과 존경받는 제자들이 계시는 곳
이 된다.”
이 두 품 원문의 대략적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물으십니다.
“수보리여, 항하에 있는 모든 모래알 하나하나가 각각 하나의 항하를 나타내고, 그렇게 많
은 항하가 있다면 그 속의 모래가 참으로 많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말합니다.
“아주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라면 항하의 수만 하여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데, 하물며 그 강 속의 모래알 수량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그 모래알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칠보로 보시한다면 그가 얻는 복이 많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답합니다.
“참으로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진실하게 그대에게 알려주도록 하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믿고 받아들여
행하거나 혹은 그냥 이 경전의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설해
준다면 그의 복덕은 앞서 말한 사람의 복덕을 이미 넘어섰다.”
여기에서, ‘받아 지니다’ 즉 ‘수지(受持)’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
처님께서 말씀하신 이치를 알아듣고 그대로 행하여 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을 ‘수(受)’
라고 하고, 상에 집착하지 않는 경계를 늘 유지하는 것을 ‘지(持)’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받
아 지니다’는 알아듣고 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끊임없이 지속시킴을 뜻합니다.
불경은 산스크리트어에서 번역해 온 것인데, 산스크리트어 경전에서는 흔히 게송을 이용
하여 부처님께서 설법한 관점을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앞서 배운 법화경의 「상불
경보살품」을 보면, 상불경보살이 마지막에 열반에 들 때 갑자기 허공에서 위음왕여래가 설
한 법화경의 20천만억 게송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여래께서 흔히 게
송을 이용하여 설법하셨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금강경은 한문본이기에 도반들이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 사구게가 정확히 어떤 네 구절인지 찾기는 어렵습니다. 불교사적으로 사구게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구게는 금
강경의 반야 지혜를 표현하신 부처님의 하나의 관점, 예를 들어 ‘머무는 데가 없이 마음을
내다’ 혹은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 등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수보리여, 만약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이 경을 설하되 설령 사구게 하나
라도 설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을 설하는 그곳은 천인·사람·아수라를 포함한 일체중
생이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곳이 될 것을. 하물며 몸소 실천하여 힘이 닿
는 대로 독송하고 수행함에 있어서랴. 수보리여, 그대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은 세
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희유하면서도 진귀한 법을 성취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이 경전이
있는 데가 곧 부처님께서 계시는 곳이며 존중받는 제자들이 계시는 곳이기에 존중해야 한
다..”
여러분은 많은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만약 누군가가 경전을 받아 지녀 독송하며, 다른 사
람을 위해 강설한다면 아주 큰 공덕과 복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아왔습니
다. 어떤 친구는 경을 설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아주 큰 복덕을 받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논점에 대해서는, 경전을 설하는 사람이 그저 다른 사람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거
나 경전에 쓰여있는 대로 읽기만 하였는지, 아니면 부처님께서 강설한 말씀을 진정으로 이
해하고 그대로 행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오직 스스로 꾸준히 행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해설해야만 공덕과 복이 비로소 신속하게 임할 수가 있습니다.
또 다른 한 측면에서, 여러분이 생각하는 복덕의 과보란 무엇입니까? 중생 마음에는 온갖
욕망이 있어 이 세상에서 명예와 이익을 얻고, 자신의 모든 욕망을 채우는 것이 복덕의 과
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온갖 욕망의 충족이 진정한 행복의 원천일까요? 여러분의 복덕은
모두 그런 형태로 나타나야 합니까?
금강경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심신 안팎의 모든 상을 떠나 여여부동하여 경계에 휘
둘리지 않으며 만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만약 끊임없이 정진하고 실천한다면, 일체의 번
뇌는 다하고, 생사윤회는 마무리되어 끝내는 성불할 것입니다. 이때 얻게 되는 경계와 공덕
은 속세의 중생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속세에서 짧고 번뇌가 있는 큰 복은 이에
비할 바가 못 되며, 이 짧고도 큰 복은 단지 먹고 마시고 노는 유희에 불과할 뿐입니다.
법화경을 보면, 어린 용녀는 이 지혜를 위해 삼천대천세계의 값어치가 있는 보주를 기꺼이
보시합니다.
부처님께서 제12품에서 또 말씀하시길, 누군가 이 경전을 설한다면, 설하는 그곳은 모든
천인·인간·아수라가 모두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곳이 될 것이며, 경전이
있는 곳에 바로 부처님께서 계시고 존중받는 제자들이 같이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
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은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인쇄된 책을 책상에 놓고는 매일 부처님께 절하듯이
예배합니다. 사실 이렇게 절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쩌면 그 경건
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반야 지혜를 깨달을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세속적인 학문을 하는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완전히 미신이라고 여깁니다. 즉 어
떻게 불상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경전에 절한다고 해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가고 말입
니다. 이 또한 그들이 진정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뿐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경전은 ‘내려놓음’을, 모든 상과 집착 따위의 버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큰 진리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그대가 내려놓고 집착을 버리면 자연히 우주의 실상으
로 들어가게 되어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지혜는 대부분 듣
고 공부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신수봉행하여 ‘내려놓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입니
다.
만약 누군가가 절을 하면서 아만심(我慢心)을 내려놓는 동시에 탐·진·치·만·의를 내려놓아
마음이 부드럽고 평화롭고 너그러워지며 더는 이 세상의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
다면, 이 세상에서 그가 내려놓는 것이 많을수록 그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실상에 들어갈
기회가 더 많아지게 되어 금강경을 알아갈 기회도 더 많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대
가 절하는 동작만 할 뿐 탐·진·치·만·의가 더욱 심해져서 마음속으로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았다면 그것은 미신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다만 불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세운 작은 방편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경전의 목적은 단 하나, 즉 여러분이 이를 알아듣고 즉시 실천하
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실 때 끊임없이 비유를 들면서 층층이
분석해나가셨습니다. 그분의 본뜻은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을 작은 책자로 인쇄해 놓고 그
책에 절을 하거나 혹은 뜻도 모른 채 앵무새처럼 독송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던 당시 법회에는, 대중 중 계율을 엄정하게 지키는 제자들과 마음이
청정한 거사들이 있어, 법을 듣는 즉시 집착을 깨뜨리고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어떤
제자는 지어 그 자리에서 듣고 바로 깨달음을 얻어 과위를 증득하기도 했습니다. 심성을 여
태 깨끗하게 청소하지 못해 준비가 덜 된 제자라도 법회가 끝난 후에 부처님의 견지를 믿고
받들어 행하여 일상의 모든 생각과 행주좌와에서 적용함으로써 아주 빨리 대보살의 경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마땅히 부처님의 말씀을 힘써 이해한 후, 그것을 일상적
인 행위에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이 경전에 대한 진정한 공양이고 진정한 공경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만약 누군가가 받들고 지니고 독송하며 금강경의 가르침대로 수행한
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희유한 법을 획득하고 성취하였음을 응당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 같이 생각해봅시다. 비근한 예로, 핵잠수
함이나 원자탄 등을 만드는 기술은 국가 기밀이라 일반인은 알 수도, 획득할 수도 없습니
다. 설령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희유한 법을 중생에게 아낌없이 보여주셨으니 우리는
마땅히 이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