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품 화무소화분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그대들은 여래가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
는 생각을 한다고 이르지 말라. 수보리여!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여래가 제
도할 중생이 실로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면, 여래는 곧 아상·
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내가 있는 것은 곧 내가 있는 것이 아니
건만 범부들은 내가 있다고 여긴다’고 여래는 설한다. 수보리여! 범부에 대해서도 여래
는 범부가 아니라 이름하여 범부라고 설한다.”

이 품의 대체적인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가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그대들은 생각하지 말라. 이러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실 여래가 제
도해야 할 중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한 중생이 여래로 말미암아 성불하였다면
여래는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가진 것이 된다.”
“수보리여, 여래가 ‘내가 있다[有我]’고 한 것은 곧 진실로 변하지 않는 내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범부들은 실재하는 ‘내’가 존재한다고 여긴다.”
“수보리여, 여래가 범부라고 말씀하심은 진짜로 변하지 않는 진실한 범부가 존재함을 지
칭한 것이 아니다. 다만 세속에 따라서 가명으로 범부라고 부를 뿐이다.”

이 품에서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 패턴은 제21품에서의 그것과 같습니다. 제21품의 원
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수보리여, 그대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설할 법이 있다’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지 말라.”
이 품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그대들은 여래가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생
각을 한다고 이르지 말라.”
금강경의 서두에서 부처님과 수보리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부
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삼계육도의 중생을 널리 제도하겠다고 발원하되 “실로 제도할 중생
이 없다”는 견지를 가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게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부처님께서 다시 이 문제를 언급하시면서 여래의 진공 경계에서는 일념도 일으키지
않는 상태에서 중생을 제도해야 함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진공 경
계에서는 여래가 제도해야 할 중생이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즉 여래의 과위에서 중생을 바
라보면 중생의 윤회와 전도는 환상, 가유(假有)와 같지만 그 본질은 부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으며 만법 역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다. 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면, 여래는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
상이 있으므로 여래라 이름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금강경은 제17품 이후, 비록 모든 질문이 앞서 설한 십여 품의 내용과 중복되는 듯 보
이지만 제자들의 집착을 깨뜨리는 데 있어서 그 중점은 다릅니다.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겹겹의 장애가 제거되어 텅 빈 밝은[空明] 마음의 경계가 드러날 때, 여래께서는 또 끊임없
이 과위 경계를 설파하십니다.
응당 알아야 할 요점은, 우리가 비록 전도몽상의 상태에 처해 있기는 하나 전반 불법의
수행과 증득 과정에서는 마땅히 부처님 과위의 견지에 의지하여 우리의 무명을 파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비록 최고의 궁극적인 의미에서, 과위(果位)와 도위(道位)는 서로 다르지 않
고 중생의 본질은 바로 부처이며 마음·부처·중생은 서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로부터 진정한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
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현재도 끊임없이 여래의 진공 경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
신의 진면모 즉 마음의 최고로 원만하고 유감없는 귀속처(歸宿處)를 알아가게끔 인도하십니
다. 부처님 과위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그에 상응하게 무명 역시도 얼마간 파할
수 있습니다. 전반 불법의 수행과 증득 과정에서 여래의 진공 경계에서의 견지를 수행 증득
의 의지처와 기반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기초 위에서 회귀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불법을 수행함에도 마음의 인식이 여전히 세속적 이론과 견해에 의지한다면 설령 팔만사천
법문을 닦는다고 해도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없고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할 수 없습니
다.

이 품에서 부처님께서는 “여래의 진공에는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일념도 없
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진공 경계에는 중생이 없으며 중생 역시 본질에서는 부
처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부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여래가 ‘내’가 있다고 한 것은 곧 진실로 하나의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건만 범부들은
‘내’가 있다고 여긴다. 수보리여,범부라는 것도 범부가 아니라고 여래는 말씀하신다.”
이 몇 구절 설법을 듣고 나니 불교사에서 그 유명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생 장면이 떠
오릅니다. 부처님께서 어머니의 오른쪽 늑골에서 세상에 태어나시자 하늘땅이 진동하고 용
천이 물과 꽃을 뿌리면서 축하하고 공양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일곱 발을 내디디시자 그
내디딘 곳마다 연꽃이 피어났습니다. 부처님께서 일곱 발을 내디디시고는 손가락으로 하늘
과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선 이 경계를 인
간이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은 하지 않겠지만 이 경계가 불교의 대소승 수행자들이 모두
공인하는 경계라는 데 대해서는 그 어떠한 논란도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아독존’의 그 ‘아(我)’는 여러분에게도 또한 모든 중생
에게도 모두 있습니다. 다만 중생이 전도망상에 빠졌기에 이를 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중생이 이 ‘가상과 가짜 마음’에 집착하게 되면 이것의 변이와 생멸에 따라 윤회할 수
밖에 없게 되며, 이에 대한 집착으로 말미암아 고통과 번뇌는 멈출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가상과 가짜 마음’이 여러분에게 안심과 영원한 행복,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없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래가 내가 있다고 한 것은 곧 내가 있는 것이 아니건만 범부들은 내가 있다고 여긴
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범부에 대해서도 여래는 범부가 아니라 이름하여 범부라고 설한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과위에 서서 말씀하셨지만, ‘진공 경계’는 애초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결함이 있는지라 여래의 제일의제를 온전히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여래께서는 한마디 하시고는 또다시 앞서 언급하셨던 말 속에 담겨 있는 궁
극적이지 못한 부분과 원만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걷어내셨습니다.

앞 구절에서 여래께서는 당신의 과위 견지를 충분히 드러내시기 위해 범부들은 이 ‘가짜
나’를 ‘나’로 여긴다고 말씀하신 데 반해 이 품의 서두에서 부처님께서는 중생이란 것은 없
으며 중생은 모두 부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범부의 개념을 언급하시면서
곧바로 뒤 구절에서 “여래가 말하는 범부는 진실로 존재하는 범부가 아니며, 범부 또한 가
상이다. 단지 소통의 편의를 위해 가명으로 범부라고 할 뿐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 제자들 마음속의 범부상을 파하여 머릿속에 실로 중생이 있고, 실로 범부가
있다고 여기는 집착을 깨도록 하셨습니다. 중생이 중생상과 범부상, 나아가 부처의 상에도
집착하므로 부처님께서는 다음 품에서 바로 32상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품의 중점은 이런 상을 타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여래의 진공 경계에서는
궁극적으로 무아이므로 일념(一念), 일법(一法)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데
있습니다.

https://www.ziguijia.com/translation/KOR/F1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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