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을 나서자 이미 마력의 통제 범위를 벗어났지만, 대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마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급히 걸음을 옮기던 대비의 앞에 마침내 수많은 산굴과 초가집이 나타났다. 마계의 금벽휘황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대비는 자성산 속의 불환경(佛幻境)에 들어섰는데, 산굴과 초가집마다 바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비는 그중 한 산굴 밖에 모인 인파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얼굴이 청수한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예요?”
“어? 너 새로 온 사람이지? 이런 것도 몰라?” 그 젊은 사내아이는 경멸스럽게 말했다. 대비는 소년의 입에서 오만의 독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안 보여? 이 산에는 산굴이 일곱 개 있는데, 모두 독을 푸는 데 쓰이는 곳이야. 그런데 굴마다 주인이 자기 굴이 제일 좋다고 하니까, 우리는 어느 굴에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 초가집들은 뭐 하는 데야?” 대비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더욱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만의 독이 더욱 짙어졌다.
“이것도 몰라? 네가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네. 그 초가집들도 ‘탐진치만의’ 오독을 푸는 곳이야. 오독쯤은 알겠지? 우리는 모두 독에 중독된 사람들이야. 그런데 초가집에 사는 사람들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아서, 안에서 해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저쪽 초가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대비가 물었다.
“그들은 모두 초가집에 있는 사람들의 친척과 친구예요. 안에 있는 사람이 나와서 해독 상황을 이야기해 주길 바라면서, 밖에서 여러 해를 기다려 왔어요.”
소년은 말하면서 급히 이쪽 동굴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때 한 초가집 밖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대비가 멀리 바라보니, 한 남자가 머리를 깎고 회색 장포를 입고 있었다. 대비의 생명 식별기가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고, 천목신경 속에 익숙한 그림자가 비쳤다.
“다지다!” 대비는 감격하며 다가갔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대비는 바깥쪽에 서서 다지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대사님, 해독하셨습니까?”
“아, 저를 대사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다지가 겸손하게 말했다.
“저는 해독하지 못했습니다. 초가집도 해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십수 년을 지내면서 한 가지 도리를 깨달았습니다.”
다지가 해독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떠나갔고, 다른 사람들은 다지가 깨달은 도리를 들어 보려 했다.
“알고 보니 우리 몸속에는 아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만 깨지면 우리의 독은 곧바로 사라집니다”
“그럼 그 아집은 어떻게 깨뜨릴 수 있나요?”
“우리 이 산 위에는 신인이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이 손에 쥐고 계신 보물 그릇에 공덕수가 가득 차면 그것이 보편적인 사랑의 빛을 발합니다. 우리가 이 물과 빛을 얻을 수 있다면 아집이 깨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덕수는 우리가 끊임없이 선행을 하고 선한 생각을 일으켜야만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신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찾을 수 없습니다. 산에는 오르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덕수가 가득 차면 그 신인은 저절로 나타납니다”
“그럼 얼마나 걸리는데요? 우리는 지금 당장 해독하고 싶어요. 우리는 다른 동굴이나 보러 가요.” 다지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갔다.
오직 한 소년만이 여전히 다지를 바짝 따라붙었다. 대비의 천목신경은 이 소년이 구조대원임을 알아보았다. 대비는 몹시 흥분하여 곧바로 다지 곁으로 걸어가 그의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다지” 다지의 얼굴에 순식간에 조홍색 독무가 피어올랐다. 그는 대비의 손을 뿌리쳤다. 그 소년은 걸음을 옮겨 다지와 대비 사이로 들어서더니 화가 나서 말했다
“대사님께 무례하게 굴지 마라, 꼬마 마녀야.”
대비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그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다지야, 나는 대비야. 다보여의왕을 기억하지 못하겠니? 네 구조 임무도 기억나지 않니?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 거니? 여기는 불환경(佛幻境)이야. 여기에 살아서는 독을 풀 수 없어. 만수만안신인을 찾아야 해.” 다지의 얼굴은 복숭앗빛에서 밀랍처럼 누런빛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남은 독이 그의 온몸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너는 어디에서 들어온 거냐?” 다지가 엄숙하게 물었다.
대비가 말했다. “나는 마궁을 통과해서 들어왔어.”
“하하.” 다지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여자 하나로 마궁을 통과했다고? 그래도 너는 마녀치고는 비교적 친근하구나. 마독을 맞은 것도 많지 않을 테고, 거짓말도 못 할 테니 나도 너에게 따지지 않겠다. 그만 돌아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저쪽 동주들이 알게 되어 너를 때려죽일 테니까.”
대비가 급해졌다. “다지야, 네가 정말 네 임무를 잊어버린 거니? 그럼 너는 어디를 통해서 불환경(佛幻境)으로 들어온 거야?”
“마녀, 저리가!” 그 소년이 다시 성이 나서 대비에게 소리쳤다.
“다지야, 나는 다보여의왕이 주신 마니보주와 천목신경, 생명식별기를 가지고 왔기에 너희를 찾아낼 수 있었어.” 다지는 원래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이 말을 듣고 다시 돌아서서 망설이며 대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이고” 하며 흥분해서 물었다.
“여시주, 마니보주를 갖고 계십니까?”
“어” 대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또 몇몇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들었다. 다지가 대비의 손을 잡아끌며 “따라오세요”라고 말하고는 급히 그중 한 동굴로 걸어갔다. 쫓아온 사람들은 그 소년이 동굴 입구에서 막아섰다.
“여시주, 아까의 무례함을 탓하지 마십시오. 얼마 전 마왕이 마녀 한 무리를 보내 불환경(佛幻境)을 어지럽게 만들고 마독을 사방에 퍼뜨렸습니다. 원래 그 동굴들은 모두 독을 풀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마자마손 몇몇이 변장하고 동굴에 섞여 들어와, 지금 동굴에는 마독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옛 독도 풀지 못한 채 새 독에 또 물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굴에 감히 살지 못하고 따로 초막에 살고 있습니다. 아까 마궁을 관통해 들어왔다고 말씀하셔서 몹시 놀랐습니다. 마궁을 관통해 오신 경위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대비는 다력의 일과 마궁을 관통해 온 경위를 이야기했다. 다지는 그것을 듣고 감탄하며 말했다. “다력은 모두의 독을 풀기 위해 마환경(魔幻境) 깊숙이 들어가 해독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녀의 발심과 용기는 감탄스럽고도 부끄럽게 합니다. 마왕이 어둡지만 한 생각에 선을 향할 수 있다는 것도 불가사의합니다.”
“그럼 당신들은 어디에서 불환경(佛幻境)으로 들어온 것입니까?” 대비가 물었다.
“여시주, 산 너머에 또 하나의 입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들어갈 수만 있고 나올 수는 없습니다. 불환경(佛幻境)에 들어온 사람이 해독에 성공하지 못하면, 나가려면 반드시 마환경(魔幻境)을 관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몸에 마독을 맞아 마자마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전부터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저도 해독 방법을 찾지 못해 나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떻게 그런 모습이 되셨습니까?” 대비가 물었다. 다지는 자기 머리를 만지며 웃으며 말했다.
“우리 대부분이 다 이런 모습이에요. 이것은 하나의 표지라서, 사람들은 우리를 보기만 하면 해독 방법을 찾는 데 전념하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결혼하지 않고 채식을 하며, 우리의 직업이 신성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공경을 받습니다. 당신이 동굴을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물어볼 텐데, 절대 마궁에서 들어왔다고 말하지 마세요. 마궁에서 불환경(佛幻境)으로 들어와도 마독에 물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본 적이 없어서, 모두 당신을 마녀로 여길 테니까요. 그러면 당신은 큰 곤경에 빠집니다. 지금 불환경(佛幻境) 안은 아주 엄격한데, 주로 마자마손이 섞여 들어올까 봐 두려워서입니다. 그래서 입구마다 호법 역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동굴의 동주를 알고 있어야 하고, 게다가 그 동주가 당신을 데리고 들어와야만 불환경(佛幻境) 안의 사람들이 당신을 인정해 줍니다. 나는 불환경(佛幻境) 안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지만, 나와 아주 친한 동주가 하나 있는데, 내가 당신들을 소개해 줄 수 있어요. 그가 당신을 보호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비가 그 말을 듣고 급해져서 말했다. “다지, 나는 불환경(佛幻境)에 머물면서 보호받을 필요 없어. 나는 모든 구조대원을 빨리 찾아서 너희를 데리고 떠나야 해.”
“그래, 내가 또 사명을 잊었구나.” 다지가 뒤통수를 탁탁 쳤다.
“이제야 모든 것이 생각났어. 우리 구조대원들은 모두 독에 중독되어 있어서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어. 지금 네가 우리를 데리고 간다고 해도 밖으로 나가기조차 어려워. 우리 구조대는 올 때 3천 명이었는데, 불환경(佛幻境)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대략 1,500여 명이고, 나머지 가운데 대략 1,000여 명은 독이 비교적 심해서 아직 오독환경(五毒幻境) 안에 있고, 약 500명은 마환경(魔幻境) 안에 살고 있어. 비교해 보면 내 독이 여전히 가장 가벼운 편이지만, 그래도 나는 불환경(佛幻境)을 한 발짝만 나서면 곧바로 독이 발작해서 온몸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괴롭고, 머리가 어지럽고 멍해져서 방향조차 분간할 수 없어.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그러니 네가 우리를 데리고 떠나려면 무엇보다 해독이 가장 중요하고, 해독하려면 반드시 만수만안신인을 찾아야 해. 나는 불환경(佛幻境)에서 줄곧 자성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산에 오르는 길은 애초에 없었어.” 다지는 이 말을 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다지, 네가 마니주가 길을 비춰 줄 수 있다는 걸 잊었어?” 대비는 말하면서 곧바로 마니주를 회전시키며 마음속으로 “마니주여, 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마니주에서 만 가닥의 금빛이 쏟아져 나오다가 갑자기 그 금빛을 다시 거두어들였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한 뒤, 마니주가 갑자기 번개 한 줄기를 쏘아 동굴 천장을 가리켰고, 그 빛을 따라 동굴 천장에 문 하나가 열렸다.
“어서 봐, 산꼭대기로 가는 길이 나타났어.” 대비가 소리쳤다.
“어디에?” 다지가 의아한 표정으로 대비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했다.
이토록 강한 빛이 비춰 준 길인데도 다지는 보지 못했다. 대비는 독과 욕망으로 가득 찬 다지의 눈빛을 바라보며 마음이 몹시 아팠다.
“다지, 마니주가 이미 내 심맥과 한데 붙어 자라서 꺼낼 수가 없어. 하지만 나는 천목신경으로 마니주가 비추는 길을 볼 수 있으니, 너는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돼. 그런데 땅에서 동굴 천장까지는 길이 없어. 동굴이 이렇게 높으니 우리에겐 구름사다리가 필요해. 이렇게 높은 사다리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대비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다지는 가볍게 웃었다.
“대비, 불환경(佛幻境)에서는 거의 모든 동굴 주인이 이런 사다리를 한 대씩 가지고 있어.” 다지는 말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다지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사다리를 한 대 들고 들어왔다. 사다리는 접을 수 있어서 필요할 때 펼치는 것이었다. 사다리를 펼치니 동굴 천장까지 닿기에 넉넉했다. 대비는 이 사다리의 정교하고 교묘한 솜씨와 휴대하기 편리한 점에 매우 감탄했다. 그녀는 다지와 함께 사다리를 타고 동굴 천장으로 올라가 마니주가 비춰 주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저 멀리로 뻗어 있는 긴 통로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기괴하고 화려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대비와 다지는 조심조심 걸었다. 대비는 그 빛들을 보며 마환경(魔幻境)의 빛을 떠올렸다.
“너무 비슷해.” 그녀는 문득 마왕과 다력을 떠올렸다. 그런데 생각이 든 그 순간, “하하하” 하며 마왕이 크게 웃으면서 그들 머리 위 허공에 나타나더니 사납게 대비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비, 네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여기는 마환경(魔幻境)이다. 네 힘으로는 내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주를 내놓아라.”
다력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 나타나 대비에게 “빨리 가!”라고 외치더니 선혈을 토하며 쓰러졌다.
“여비가 너 때문에 죽었다. 그녀의 목숨을 돌려내라.” 흉악한 마왕이 대비에게 덤벼들자, 대비는 겁에 질려 자꾸만 뒤로 물러섰다.
“대비, 여기 이 빛은 오독에 마환경(魔幻境)과 불환경(佛幻境)의 독이 합쳐져서 나오는 것이다. 이곳은 독기가 더 짙으니 네 마음이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 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라도 떠오르기만 하면, 그 빛 속에서 네가 상상하는 것이 그대로 화생할 수 있으니까.”
이때 마왕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공중에 손이 수없이 많고 눈이 수없이 많은 신인이 나타났다. 대비는 이를 보고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가 드디어 그대를 찾았구나.” 대비가 감격에 차서 말했다.
“대비, 저것은 가짜야. 환경(幻境)이야. 네 마음속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다지가 말했다.
“하지만 저는 방금 그를 생각하자는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요.” 대비가 다급하게 말했다.
“네가 방금 마음을 먹지는 않았어도, 그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속 집착이 그의 형상을 크게 드러내게 할 수도 있어.”
과연 대비가 잠시 정신을 놓자 신인은 사라졌고, 이때 다지가 갑자기 대비 쪽으로 다가왔다.
“대비,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 아마 더는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잡념은 전혀 없지만 독이 깊이 들어 잠만 자고 싶어.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워.”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지는 대비에게 기대어 잠이 들었다. 대비는 다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 역시 조금 어지럽고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잠들어서는 안 돼.” 대비는 아버지가 주신 해독환을 떠올렸다. 그녀가 막 마음을 먹자 아버지가 공중에 나타났다. 대비는 그것이 환경(幻境)임을 이미 알아차리고 무시한 채 해독환을 꺼내 반 알을 부수어 다지의 입에 넣어 주었다.
“대비, 너는 급히 돌아가야 한다. 너는 이미 엿새가 넘는 시간이 지났다.” 대비는 그 말을 듣고 그것이 환경(幻境)임을 알면서도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독이 그 틈을 타 순식간에 대비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대비는 재빨리 남은 반 알의 해독환을 입에 넣었다. 잠시 후 다지가 정신을 차렸고, 대비도 정신이 맑고 기운이 상쾌함을 느꼈다.
대비는 “아찔했어”라고 생각했다.
남은 길에서 그들은 정신을 집중하고 기운을 북돋우며 조금도 마음을 흩뜨리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른 채, 다지와 대비는 마침내 또 하나의 출구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