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을 닦고 증득하는 데에는 당연히 채식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① 채식은 기운이 맑아 우리의 맥도를 비교적 청정하게 하여, 생리를 전환할 때 기맥을 뚫고 변화시키기 쉽게 한다.
② ‘식색성야’라 했듯이, 음식과 남녀의 정욕은 인간의 근본 욕망이다. 우리가 음식을 담백하게 먹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욕망도 함께 옅어져서 마음이 맑아지고 욕심이 줄어들어 수행에 이롭다.
③ 채식을 하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살생을 피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수행하는 동안 살업을 너무 많이 지어 역연이 늘어나는 일이 없어져 수행에 이롭다.
- 우리는 때때로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불교를 믿고 인과를 믿기 때문에 오히려 항상 모순 속에 빠지게 된다. 이런 경우를 만나면, 고기를 먹기 전에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거나 부처님과 보살님의 명호를 조용히 염송하여,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께서 당신을 통해 초도하시도록 하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문을 외울 때 마음이 매우 청정하고 염력이 오롯이 집중된다면, 그 힘으로 비록 초도하지는 못하더라도 동물이 죽을 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고 진심도 줄어든다. 그러면 고기를 먹음으로써 간접적으로 지은 살업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나는 일찍이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일이 잦았다. 친구 중에 고기 요리를 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고기 요리가 상에 오를 때 마음의 힘으로 초도를 하곤 했다. 초도를 할 때마다 나는 많은 동물들이 빛으로 변해 떠나가는 것을 보았고, 상 위의 고기 속에서 그들이 떠나감에 따라 다량의 검은 기운 덩어리가 빠져나오는 것도 보았다(이는 동물이 죽임을 당할 때, 그 고통과 진한이 육체에 독소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며 구워지는 물고기 한 마리를 위해 초도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물고기가 완전히 죽지 않은 채 철판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결코 물고기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열네다섯 살쯤 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극심한 고통 때문에 그 물고기는 순간 혼이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이런 초도는 순간적으로 입정하여 그 혼백을 다시 모아야 하므로 초도하기가 몹시 힘들다. 만약 우리의 염력이 부족하고 주문도 외울 줄 모른다면, 고기를 먹을 때 방생을 많이 하거나 사찰에 가서 네가 먹은 동물을 위해 초도를 하는 것도, 약간의 선업을 쌓아 공으로 허물을 보충하는 셈이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제공활불도 고기를 먹지 않습니까? ‘술과 고기는 창자를 통과하고, 부처님은 마음속에 머문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공은 활불이다. 그는 개고기를 먹을 때 그 개를 바로 초도해 버렸다. 그의 몸과 입과 뜻의 가피력은 모두 불가사의하다. 네가 활불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제공을 본받지 않는 것이 낫다. 또한 티베트 불교도 고기를 먹지만, 그것은 특정한 지리적 환경과 특정한 수행법문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비록 음식이 우리의 궁극적인 원만한 해탈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입수처는 아니지만, 우리가 모든 면에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면 수행의 선연이 조금 더 많아져 수행이 조금 더 순조로워진다. 재가자가 수행할 때는 형식에 집착하여 억지로 하는 것을 절대 삼가야 한다.
예를 들어, 완전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다. 요리사가 부주의하게 고기를 썰던 도마나 고기를 끓였던 냄비를 깨끗이 씻지 않았다면, 그가 조금이라도 고기 기름 맛을 느끼는 순간 진심이 크게 일어난다. 때로는 남이 일부러 자신의 도행을 깨뜨리려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 생각의 진심이 일어나면 팔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린다’는 말을 모르는 것이다. 그가 이전에 채식을 하며 닦아 놓은 공덕은 모두 그의 분노의 불길에 타서 사라져 버린다. 옛날 석가세존께서 탁발하실 때, 중생이 고기 음식을 공양하면 세존과 제자들도 섭수하셨다. 그것은 중생의 공양을 수순하고 방편을 베푸는 것이며, 자비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수행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심동념이다. 탐·진·치·만·의 가운데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공덕은 행동으로 짓는 선행보다 훨씬 크다. 채식과 오후불식, 보시 등을 아무리 잘한다 해도 기심동념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면,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네가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고 너무 집착해서 닦는다고 느낄 것이다. 오히려 네가 너그럽고, 참고 양보하며, 수순하고, 사심 없이 남을 도와주는 것만 못하다. 설령 네가 고기를 먹더라도, 중생은 오히려 네가 부처님과 보살님의 품성을 더 지니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