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좌선할 때 나는 반가부좌를 하고 두 손을 아무렇게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마음속으로는 장난치는 기분이었다. 눈을 감은 지 몇 초 만에 내 몸과 마음이 갑자기 텅 빈 듯 고요해지면서 눈앞에 아름다운 그림들이 한 폭 한 폭 펼쳐졌다. 산과 물,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공작이 눈앞에서 꼬리를 펼치고, 뱀이 온순하게 무릎 아래를 기어다녔다. 그때 갑자기 귓가에 파도가 해안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점점 또렷해지는 해조음에 바람의 포효와 사람의 구조를 청하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문득 나는 섬 위의 높은 바위 위에 앉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연꽃 한 송이를 바다에 띄웠다. 바다 위에는 풍랑에 뒤집힐 듯한 목선 한 척이 떠 있었는데, 그 연꽃이 배를 향해 떠가더니 배의 밑바닥을 받쳐 올렸고, 순식간에 바람과 파도가 잠잠해졌다…
나는 그런 경지에서 갑자기 빠져나와 눈을 떴다. 곁에 있던 아이가 오줌을 싸서 울고 있었다. 나는 바삐 기저귀를 갈아주고 시계를 보니 거의 12시가 되어 있었다. 남편이 점심때 돌아와 밥을 먹으려면 채소도 씻어야 했다. 나는 아이를 달래면서 바쁘게 밥을 준비하느라 좌선의 경지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다음 날 오후, 아이가 또 잠이 들자 나도 흐리멍덩하게 누워 있었다. 문득 어제 좌선할 때 본 광경이 떠올라 마음이 꽤 흐뭇해졌다. 알고 보니 좌선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다. 눈을 감고만 있으면 그렇게 아름다운 영상이 보이고, 꿈을 꾸는 것처럼 소리와 이야기 줄거리까지 있었다(나중에야 알았지만, 좌선을 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경지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 또 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오늘 다시 한번 앉아 보면 무엇이 보일까? 그래서 곧바로 일어나 어제처럼 침대에 앉았다.
이번 경지는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몇 분 후 나는 구름 위에 앉아 있었는데, 거기에는 연꽃 좌대가 있었고, 나에게는 천수천안이 생겨 있었다. 이어서 내 모습이 계속 바뀌더니, 잠시 후에는 네 개의 팔이 되고, 머리 위에 또 머리가 돋아나고 어깨에서도 머리가 솟아났다. 구름 위에서 나는 가사를 두른 수많은 스님들을 보았다. 또 어디선가 들려오는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를 들었다. 눈앞의 풍경은 끊임없이 바뀌어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즐겁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울음소리가 나를 깨웠다. 곁에 있던 아이가 깬 것이다. 시계를 보니 나는 이미 두 시간 넘게 앉아 있었는데, 정작 나는 겨우 십여 분밖에 앉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달랜 뒤, 나는 다시 저녁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좌선의 재미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남게 했고, 이틀 동안 좌선을 한 뒤로는 정신이 한층 맑아져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당시 우리 집안 사정을 간단히 소개하고 싶다. 남편은 교통경찰이었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이 가난했으며, 어머니가 허리띠를 졸라매며 그를 대학까지 마치게 한 뒤에는 더 이상 그의 생활에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는 나보다 몇 년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결혼할 때 우리 신혼집은 그의 직장 기숙사 방 하나였고, 결혼식 비용도 고작 수천 위안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허베이성의 한 미술학교에서 중국화를 배웠고, 나중에 시내 신화서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한 지 일 년여 만에 임신해서 병가를 내고 월급의 60%만 받았다. 남편은 일이 몹시 바빴다. 점심과 저녁에 돌아와 밥을 먹으며 집안일을 조금 도와주는 것 외에는, 아이를 낳은 뒤로 우리는 대화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우리 부부의 살림살이는 빠듯했다.
아이를 낳은 뒤로 내 몸은 몹시 안 좋아져서 골반염과 담낭염이 자주 도졌다. 게다가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서, 밤에는 아파서 울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는 가사일에 모든 정력을 쏟는 것 외에는, 그저 피곤하고 졸려서 잠을 조금 더 자고 싶을 뿐이었다. 집에 오래 머물다 보니 친구들과도 왕래가 드물어졌고, 세월은 그렇게 조금씩 흘러갔다. 나날은 평온했고, 지루하다고 느끼지도 않았으며,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았다. 그 시절 나는 무언가를 생각할 만한 정력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한때 화가와 시인이 되고 싶던 꿈은 모두 기름·소금·간장·식초와 아이의 기저귀에 밀려 희미해져 갔다. 그래도 가끔은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일기를 보면, 나는 생활을 아무 맛도 없는 맹물 한 잔에 비유해 두었다.
아들이 자라는 즐거움과 그에 대한 호기심은 더 이상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생활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욕심내게 되었고, 언제나 내 삶에 무언가 일이 생기기를 바랐다. 마침 그런 마음가짐일 때, 이 두 번의 좌선 경험이 나를 너무나 기쁘게 했다. 좌선이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라니, 그것은 한순간에 내 삶의 모든 공백을 채워 주었다. 나는 거의 매일 앉고 싶어 했다. 시간만 나면, 심지어 집안일을 많이 포기하고 시간을 쪼개 좌선을 했다. 당시 나는 이런 행동을 수도와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앉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새 몇 달이 지났다. 나는 좌선에 점점 더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데, 좌선할 때마다 경지가 나타났고 그것들은 모두 너무나 아름답고 신기해서 마치 신화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내 몸도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얼굴색이 붉고 윤택해지고 뼈가 아프지 않게 되었으며 잠도 줄고 정력도 훨씬 왕성해졌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뒤 어느 날 오후, 아이가 잠들자 나는 평소처럼 서둘러 좌선을 시작했다. 몇 분 후 나는 자신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음을 느꼈다. 그때 나는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아무개의 제80대 투생전세다. 네 사명은 불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너는 재액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5년이면 초탈할 수 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내가 물었다. “하하하…” 시원한 웃음소리가 지나간 뒤, 높이가 두 미터가 넘고 금빛이 찬란한 패 하나가 내 앞에 떨어졌다. 그 위에는 내가 보기에 범어로 쓰인 것 같았지만, 내 시선이 닿는 곳마다 범어가 저절로 한자로 바뀌었다. 거기에는 내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이번 생에 겪게 될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고 나서 패는 사라졌고, 나는 다시 영화를 보듯 업을 빌려 투생하는 전 과정을 보았다. 그 모든 것을 본 뒤에 나는 정에서 나왔다. 그때의 심정은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것 같았다. 나는 많은 것을 깨달은 듯했지만, 눈앞의 아이와 집을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은 매우 흥분되었다. 나는 무엇인가를 찾은 듯한데 그것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고, 그것이 바로 지난 20여 년 동안 내 마음속에서 줄곧 갈망하고 찾아왔던 것인 듯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친구들이 찾아와 좌선할 시간이 없었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아이와 남편이 모두 잠이 들었다. 허리가 아프고 온몸이 쑤셨지만 나는 마음속의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 그 무렵 좌선은 이미 내가 매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되었고, 세수하고 양치질하듯 생활의 습관이 되어 하루라도 앉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몹시 불편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래도 일어나 좌선을 했다. 이때쯤 나는 좌선 중에 나타나는 경지를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처럼 호기심과 흥분에 빠져 경지 속에서 놀다가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 좌선한 지 십여 분 만에 나는 정에 들었다. 눈앞에 갑자기 거대한 불경이 나타났는데, 불경이 빠르게 중간쯤의 한 페이지로 넘어갔다. 경문 중 한 줄이 클로즈업되었고 검은 글자들 사이에서 매우 눈에 띄게 붉은색으로 변했다. 바로 네 글자, 『관심즉불』이었다.
그 네 글자가 내 앞에 잠시 머물다가 불경은 사라졌다. 나는 자신이 새소리와 꽃향기가 가득한 골짜기로 들어서는 것을 발견했다. 골짜기 깊은 곳으로 통하는 구불구불한 작은 길이 있었고, 길목에는 젊은 스님이 한 분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곧바로 물었다. “스님, 관심즉불은 무슨 뜻입니까?” 그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는 듯했지만, 나는 들을수록 더 헷갈려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그는 목탁을 거두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를 따라오게.” 나는 그를 따라 골짜기 깊은 곳으로 걸어가 험준한 절벽 아래에서 멈춰 섰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아주 공손하게 절벽을 향해 말했다. “스님, 그녀를 데려왔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떠나갔고,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절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야, 내가 너를 오래 기다렸다.” 나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는데, 절벽 꼭대기에 늙은 스님이 한 분 서 있었다. 그는 통통하고 키가 컸으며, 출가인의 회색 장삼을 입고 목에는 커다란 단향 염주를 걸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 갑자기 그 앞에 서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비로운 눈매에 평화로운 말투였고, 나는 곧 그에게 신뢰와 친근한 의지감을 느꼈다.
그는 나에게 관심즉불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정 속에서 나와 그의 교류가 단지 일종의 심령감응일 뿐임을 깨달은 듯했다. 그가 한 마디를 하면 나는 마음속으로 그가 표현하려는 모든 뜻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결코 한마디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내 스승이라며, 내일부터 자신의 법문인 대광명법 8부를 전수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다. 나는 그에게 이름이 무엇이고 어떤 분인지 물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알 필요 없다. 나를 ‘천축노인’이라고 불러라.” 그날 그는 나를 데리고 그곳의 산수를 두루 구경시켜 주었고, 나에게 불학 지식과 이치를 많이 이야기해 주었다.
정에서 나온 뒤에도 나는 그의 따뜻한 기운이 여전히 내 주위를 감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은 이미 그에게 비할 데 없이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그 느낌은 오래전에 헤어진 아이가 어머니를 찾은 것처럼 흥분되고, 감격스럽고, 신비로웠다. 다음 날, 나는 아이가 일찍 잠들기를 바랐다. 정성이 지극하면 이루어진다고, 아이는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잠이 들었다. 나는 감격한 나머지 곧바로 좌선을 했다.
스승이 나타났다. 그는 비교적 엄숙한 얼굴로 포단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나와 스승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곳은 매우 조용해서 가끔씩 흐르는 물소리만 들렸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그는 대광명법 제1부인 명심견성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법문의 기원과 방법, 그리고 수련이 끝난 뒤 마음과 인체의 기맥이 변화하는 정도까지 설명해 주었다. 그가 설명을 마치자 나는 법에 따라 관상 수증에 들어갔다. 선정 속에서 시간이 대략 30분쯤 지났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이미 제1부 공법의 수증 과정을 마쳤다. 스승이 나를 칭찬했고, 나는 무척 기뻤다.
하루에 한 단계씩 배워 연속 8일간의 좌선으로 나는 스승의 모든 과정을 배워 마쳤다. 제2부부터 제6부까지 나는 다섯 가지 신통을 배웠고, 제7부와 제8부에서는 주로 술수, 별자리, 풍수, 법술 등의 지식을 익혔다. 스승은 나에게 매우 만족해하며 거의 늘 칭찬해 주었다. 그는 늘 나를 ‘아이’라고 불렀고, 나도 그 앞에서는 그저 몇 살짜리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느꼈다. 스승의 칭찬은 수행에 대한 나의 자신감을 몇 배로 키워 주었고, 나는 점점 더 스승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좌선을 하지 않아도 스승이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계신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매 순간 익숙하고 따뜻하며 보살핌을 받는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내 마음은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달콤했고, 또 언제라도 어머니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릴 준비가 된 아이 같기도 했다. 나는 매일 해야 할 일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좌선에 쏟아부었고, 간절히 스승을 만나고 싶었다. 그때는 정에 들어야만 그를 볼 수 있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집안일은 점점 더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방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고, 밥을 하는 것조차 자주 잊어버렸다. 당시 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이 없었고, 오직 시간을 내어 정에 들어 스승과 교류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물론, 가장 먼저 나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은 남편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갑자기 냉대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결혼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았고,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나는 방을 정리하지 않고 아이를 지저분하게 키운 것 외에도 성생활에 흥미가 없었다. 그때 나는 수행을 위해 금욕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갑자기 하고 싶지 않아진 것이었다. 게다가 그때부터 나는 순수하게 채식만 하기 시작했다. 고기를 보면 메스꺼웠고, 고기가 섞인 음식을 먹으면 가벼운 설사를 했다. 남편은 하루 세 끼 푸성귀만 씹어야 했고, 밤에 아이가 잠드는 것을 보면 나는 남쪽을 향해 앉았다. 그는 초조해지고 괴로워하며 상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어찌해야 할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수행하고자 하는 염원이 이미 내 삶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고, 갈 길이 없었다! 나는 거대한 유혹에 끌려든 것 같았다. 일단 그 속으로 들어서면 내 몸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등 뒤에는 나를 밀어붙이는 강력한 힘이 있는 듯해서, 나는 반 걸음도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기회를 찾아 남편에게 내가 좌선 수행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내 말을 이해하고 믿어 주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신화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는 어린애가 아니야. 나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네가 이런 말을 밖에 하면 누가 믿겠어? 앞으로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마.” 나는 마음속으로 몹시 실망했다. 남편과의 대화는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선정 속에서 스승이 가르쳐 주신 내용을 곧 모두 배워 마쳤고, 그 후의 좌선에서는 다시 스승이 가르쳐 주신 법문을 회상하며 재차 닦지는 않았다. 스승은 나에게 선정 속에 나타나는 어떤 경계도 보지 말라고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내 경계에는 어쩌다 무서운 영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나는 거미를 가장 무서워했는데, 그때부터 자주 정 속에서 거미가 내 온몸을 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거미를 무서워할수록 거미는 더욱 커졌다. 만약 ‘제발 머리 위로 기어오르지 마라’고 생각하면, 순간 내 머리와 얼굴에는 거대한 거미가 가득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금강경의 말씀을 떠올렸다. “일체의 유위법은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며, 꿈과 환영과 물거품과 그림자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이 떠올린 경문으로 옮겨가면, 온몸의 거미는 순식간에 깨끗이 사라졌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선정 속에 무서운 광경이 나타나든 아름다운 광경이 나타나든 나는 못 들은 듯이 넘길 수 있었고, 그것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렇게 경계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머릿속의 잡념은 오히려 늘어나 때로는 정에 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생각이 나뒹굴었다. 스승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생각을 붙들지 마라. 생각도 경계와 같아서, 물이 흐르듯 네 곁을 스쳐 지나가게 두고 조용히 바라보아라. 생각의 선과 악,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을 분별하지 말고 그저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방관자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정에 들 필요가 없었고, 언제든 스승을 볼 수 있었으며 그와 교류할 수도 있었다).
내 수행이 날로 정진해 감에 따라 가정의 갈등도 나날이 격화되어, 나는 남편과 사소한 마찰을 빚게 되었다. 그 무렵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했다. 내 가족이 경제적으로 일부 도움을 주어 내 생활 여건은 많이 나아졌고, 나는 아이를 함께 돌볼 어린 보모도 한 명 고용했다. 남편의 내게 대한 불만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시절 생활 면에서 아주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온 힘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정과 남편을 위해 더 헌신할 겨를이 없었다. 무엇보다 남편은 내 마음이 집에, 그리고 그와 아이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뚜렷이 느꼈다. 나는 내가 집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더 나쁜 것은 내 성질이 갈수록 더 사나워진 것이다. 남편의 약간의 비꼼과 빈정거림도 나는 선정 속에서 경계를 관찰하듯 그냥 흘려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매우 어려웠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인내심이 없었고, 더 쉽게 초조해졌으며, 화도 훨씬 더 컸다. 나는 남편의 눈빛에서 그가 나를 의심하고 있음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도를 닦고 불법을 배우면 어찌 이렇게 변하는 거지? 분명히 마귀에 사로잡힌 거야!” 그럴 때면 나는 당당하게 생각하곤 했다. “도를 닦는 데 정해진 모습은 없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도이고, 바로 나의 이런 모습이다.” 내가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내가 화를 내는 것은 지혜의 발현이 아니라 습기, 곧 탐진치만의의 폭발이었다.
스승은 나에게 인욕계를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괴롭게 스승께 여쭈었다.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제 말을 믿지 않는 걸까요? 그중에는 아주 착하고 불교를 믿으며 근기가 깊은 분들도 계신데요.” 스승은 빙그레 웃으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너는 가끔 망어를 하지 않느냐? 망어를 한 과보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 망어를 한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고, 다만 앞으로는 다시는 망어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스승께 인욕계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여쭈었다. 스승은 말씀하셨다. “일에 임해서 옳고 그름을 다투어 가리려 하지 말고, 생활 속의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에 집착하지 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네가 반드시 또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이다. 너는 남편과 다투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마음에 성냄과 원한을 품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네가 지금 계를 지키며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나는 곧바로 스승의 말씀대로 실천하여 남편과 다시는 다투지 않았다.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려고 애쓰며 그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오른쪽 귀로 들어와 왼쪽 귀로 나가게 말이다. 말이 그렇지, 마음속에는 여전히 파도가 일었다. 억울함, 분노, 성냄과 원한이 내 마음을 물어뜯었고, 눈물이 내 눈가에 가득 고였다.
남편은 상실감이나 토라진 심정으로 나와 아이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 시작했다. 때로는 술을 마시고 아주 늦게야 집에 들어왔고, 가끔은 밤새 집에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정진하며 수행을 이어 갔지만, 감정 상태는 유난히 나빴고 마음의 균형을 자주 잃었다. 때로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고, 이 집을 보며, 차라리 수행을 그만둘까 생각했다. 나는 왜 수행 때문에 지금의 모든 것을 잃어야 한단 말인가! 스승님을 여전히 공경했지만, 예전의 의지하는 마음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스승님은 나에 대한 관심이 예전 그대로셨다. 큰 도리를 말씀하시지는 않으시고, 때로는 거리를 거닐며 새 옷을 사서 마음의 균형을 찾으라고 하시기까지 했다. 그분은 이 시기에는 네 마음의 균형만 잡을 수 있다면 모든 방법이 가장 좋은 법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기간 동안 스승님이 곁에 계셨음에도, 나는 좌선을 마치고 일어나면 여전히 혼란스럽고, 방향을 잃고, 억울하고, 괴롭고, 지치고,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나는 뜻밖에도 자신을 거듭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고, 왜 수행을 하는지,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문했다. 나는 예전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욕망과 습기를 보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고, 오히려 더 수행할수록 더 퇴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자신에게 지혜가 조금도 없고, 평소의 영리함마저 사라졌다고 느꼈다. 나는 멍한 상태에 빠져 점점 더 인생의 방향을 잃어 갔다. 매일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미래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성불은 나에게 그저 막연한 개념일 뿐이었다. 부처란 무엇인가?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그저 매일 스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를 뿐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더 이상 어떤 자신의 생각도 없었다. 나는 자신이 아주 우둔하고 어리석다고 느꼈다. 그러나 스승님에 대한 신뢰와 공경은 처음부터 변함이 없었고,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스승님이 그 기간 동안 내게 주신 가르침은 애써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뿐이었고, 그다음으로는 인욕계를 지키는 것이었다.
나는 계율을 지키는 것이 정말 괴로운 일이라고 느꼈다. 말로 되받아치지 않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마음속에 조금의 진념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이루기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실천하려 했다. 한 번만 해낼 수 있다면 두 번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깨달음은 내가 처음 좌선을 시작했을 때에서 비롯되었다. 입정만 하면 아주 편안했기 때문이다.
점차 나는 처음 수행을 시작했을 때 입정할 수 있었던 것이 전적으로 스승님의 가피 덕분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마음이 편안해서 어떤 이장도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좌선을 정말 큰일로 여기게 되자, 오히려 앉을 수 없게 되었다. 이후의 수행에서는 마음속의 잡념도 많아져서, 40여 분(나는 줄곧 반가부좌였다)만 앉아도 두 다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스승님은 자리에서 내려오지 말고 일초 일초 견디라고 말씀하셨다. 게다가 스승님은 곁에서 끊임없이 나를 격려하셨다. 일초만 더 견뎌라, 일초만 더 견뎌라… 통증은 점차 발목에서 허벅지로 옮겨 갔고, 이 두 곳을 오가며 맴돌았다. 때로는 아파서 온 얼굴에 땀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다 통증이 갑자기 사라졌다! 순간, 편안함이 두 다리와 온몸에 스며들었다. 스승님은 이렇게 몇 번 견디고 나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지만, 때로는 저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경험을 계율을 지키는 일에 적용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한 번만 더 참자, 일초 일초 견디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없어 결국 그것을 포용하고 풀어내지 못한다면, 참는 것은 잠시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의 인내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다. 어느 지점까지 참다 보면, 쌓였던 모든 인내심이 한순간에 폭발해 버린다. 마치 포도송이를 털어 내듯 과거에 참아야 했던 모든 일을 한꺼번에 죄다 떠올리며, 함께 총계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나는 바로 그런 상태였다. 화가 갑자기 터져 나오는 것이 미친 듯했다!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모두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고, 평소 부모님의 가르침마저 모두 잊어버렸다. 나는 더러운 말을 내뱉었고, 뜻밖에도 집안의 물건 몇 가지를 깨뜨리고 말았다. 남편은 내 행동을 그야말로 무시해 버렸다. 이번 걸작을 완성하고 나서야 나는 조용해졌고, 자신을 한 푼어치 가치도 없는 존재로 깎아내렸다. 스승님과 다시 대화할 면목조차 없었다. 그러나 스승님은 나를 꾸짖지 않으시고, 그저 위로하며 말씀하셨다. “지나간 일은 다시 생각하지 마라. 지나간 일은 이미 잘못된 일이니, 만약 그것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그것은 잘못 위에 잘못을 더하는 것이다! 아이야, 너는 몸속에 에너지가 아주 크다. 지금까지 수행해 온 끝에 기맥이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데 네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지금부터 너는 매년 일정한 시간을 내어 속세를 피해 산속에서 전념하여 수행하며 기맥의 전환을 완성해야 한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때가 되면 내가 알려 주겠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님께서 나에게 통지하셨다. 어느 달 어느 날 보타산으로 가서 그곳에 20여 일 머문 뒤 곧바로 돌아오라고. 스승님의 통지를 받고 나는 걱정이 생겼다. 첫째, 이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남편이 분명 반대할 것이다. 아이가 이제 곧 두 살이 되긴 했지만 아직 어리니, 어린 보모에게 맡겨 두기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둘째, 경제 문제였다. 보타산은 산서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 스승님께서 비행기를 타고 가라고 통지하셨으니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돈이 전혀 없었다.
여기서 나는 반드시 내 남동생 이야기를 꼭 해야 한다.
우리 남매는 모두 넷인데, 나는 셋째였다. 어머니는 선생님이셨고 아버지는 평범한 국가 간부였으며, 언니와 오빠는 모두 시청 공무원이었다. 남동생은 의과대학 중의학과를 졸업한 뒤 시 제약회사에 배치되어 일하다가, 반년 후 그만두고 시내에 개인 진료소를 하나 열었다. 그는 사람됨이 온화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좋았다. 비록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환자들이 기꺼이 그의 진료소를 찾아 진료를 받았다. 스스로 진료소를 하게 되니 시간이 자유로워졌는데, 그때 그는 여가 시간에 경기공을 단련하고 태극권을 치기도 하며, 불경을 읽고 선정을 닦기도 했다. 나는 좌선을 시작한 뒤 나타난 그 경지들을 그에게 묘사하며, 이러저러한 일련의 기이한 만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듣고 나서도 내가 본 경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아주 평온하게 나에게 물었다. “그 스승님께서 너에게 무슨 이치를 말씀해 주셨느냐?” 나는 마음속으로는 깨달은 바가 있는데 표현할 수 없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깨달음을 간단히 표현해 보라고 했다. 다 듣고 나서 그는 말했다. “나는 비록 불경을 원융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보아하니 그의 교리는 불교 경전의 교의와 어긋나지 않으니, 마(魔)가 변신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한 번도 마가 중으로 둔갑해 나를 속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마는 어떤 모습이고 부처는 또 어떤 모습일까? 나는 당시 본 불경이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쪽으로는 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동생의 긍정은 내 마음에 정심환을 한 알 먹은 듯한 든든함을 주었다. 적어도 그는 내가 말한 것이 진짜라고 믿어 줄 것이고, 그것도 진지한 태도로 생각해 줄 테니까. 그 뒤로 수증의 전 과정 동안 나는 자주 그를 찾아가 이야기하곤 했다. 가끔 내가 선정 중에 일어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내가 조금만 묘사해도 그는 내 말을 이어받아 뒤의 장면을 말해 주곤 했다. 이 점은 내게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자기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좌선할 때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캄캄한 한 덩어리, 빛 한 점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내 경지를 알았다.
그는 나를 자주 나무랐다. 어쩌면 그렇게 계집애 버릇이 많은 거냐고. 나는 그에게 받아쳤다. 그렇게 여러 해를 앉아 있었으니 마른 나무토막 같아서 영기라고는 한 점도 없다고.
물론 이번에 스승님께서 나를 보타산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나는 무엇보다 먼저 그를 찾아가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곧 그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남편의 설득은 내가 맡고, 아이는 낮에 어머니와 큰언니가 번갈아 돌봐 주기로 했다. 밤에는 시누이가 맡기로 했는데, 시누이는 다니는 직장이 우리 집과 가깝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밤에 우리 집에 와서 아이를 봐 주면 되었다. 돈은 남동생이 갓 결혼해서 산 집을 팔아 마련하려 했다. 그는 제수와 함께 계속 부모님과 살기로 하고, 나를 따라 보타산으로 가기로 했다.
나도 더 나은 방법을 떠올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각자 맡은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큰언니가 쾌히 승낙한 것 외에는 아무도 우리 생각에 찬성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마음속으로는 내 수행을 반대하지 않으셨지만, 집에서 재를 지키고 부처님께 공양하며 경전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어찌 집을 떠나 수행하러 가느냐고 여기셨다. 어머니는 또 내가 수행 때문에 가정이 깨질까 봐 걱정하셨다. 그러나 나와 남동생은 태도가 확고하여 끊임없이 여러 사람을 설득했다. 출발하는 날이 다가오고 집도 팔렸으니, 일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떠나기 전날 밤,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 아주 늦게서야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우리가 출발하려 할 때, 남편이 갑자기 직장에서 돌아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가방만 아래층까지 내려다 주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내 마음은 마치 오미병을 뒤엎은 듯 개운치 않았다. 나는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나서 내 첫 순례길——관세음보살의 도량 보타산으로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닝보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은 뒤에야 배를 탔다. 배는 보타산에 닿았고, 우리는 바닷가 가까이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다. 나는 선정 속에서 수없이 남해를 보았고, 흰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을 보았으며, 귀청이 떨어질 듯한 바닷물결 소리도 들었다. 오늘에야 마침내 직접 남해 가에 앉아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소리를 듣자, 마음이 탁 트이고 고요해져서 며칠 동안의 불안과 초조와 피로가 모두 바닷물에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다음 날 우리는 낙가산으로 갈 준비를 했다. 부두에 도착해 보니 바다의 풍랑이 거세서 모든 배가 출항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부두에 서서 계속 기다렸다. 나중에 개인 소유의 작은 배 한 척이 출항하겠다고 나섰지만, 배삯이 10위안이나 올랐다. 우리는 십여 명의 여행객과 함께 그 배를 통째로 빌렸다. 선실이 아주 좁아서 우리 십여 명은 서로 부대끼며 선실 바닥에 붙어 앉아야 했다.
배가 출항했는데 풍랑이 매우 거셌다. 나는 이런 작은 배를 처음 타 보는지라 마음속에 신남과 호기심이 가득했고, 어떤 위험이 닥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배에 탄 다른 사람들은 아마 모두 이곳 토박이 불자들인 듯했다. 그들은 거의 모두 손에 염주를 쥐고 향 주머니를 메고 있었고, 배에 오르자마자 모두 “나무 관세음보살”을 염불했다. 나는 생각했다. 역시 관세음보살의 도량답구나, 이곳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을 이토록 독실하게 믿는구나.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가까워지자 풍랑이 갑자기 더욱 거세졌고, 목선이 사납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파도가 선실로 들어올까 봐 작은 배의 출입구는 두꺼운 휘장으로 막혀 있었다. 선실 안은 캄캄하고 답답했다. 배가 방향을 잃은 듯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고, 흔들림의 폭은 점점 더 커졌다. 선실 안의 사람들은 이리저리 튕겨 나가며 서로 엉켜 한 덩어리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토하기 시작했다. 눈매가 맑고 곱게 생긴 염불하는 아이가 재빨리 자기 향 주머니에서 비닐봉지 한 무더기를 꺼내 사람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정말 목숨을 구해 준 것이다!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조차 할 겨를도 없이 입을 비닐봉지에 파묻고 마구 토해 댔다.
나는 창자까지 다 토해 낼 것 같았다. 모두가 정신없이 토하고 있을 때, 배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배에서 내리자 하늘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배를 탔던 몇몇 사람들이 뱃사공과 무언가를 다투고 있었고, 나는 남동생과 함께 지도 설명을 따라 서둘러 사찰을 찾아갔다. 십여 분쯤 걸은 뒤 우리 둘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동생이 옆에 노점을 벌여 놓은 사람에게 길을 물으니, 그 사람은 이곳은 낙가산이 아니며 낙가산에 가려면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 둘은 안개비가 자욱한 바다를 멀리 바라보고서야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고 보니 그 배는 가는 도중 풍랑이 너무 거세져 다시 부두로 돌아온 것이었다. 우리 둘은 섬 사정에 익숙하지 않아 방금 배에서 내린 곳이 바로 배를 탔던 곳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이틀 뒤 바람이 자고 물결이 고요해지자, 우리 둘은 마침내 소원대로 쾌속정을 타고 낙가산으로 참배를 떠났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나는 아주 푹 잠들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꿈에서 번쩍 깨어났다. 우리가 묵던 방이 눈부신 흰빛에 휩싸여 있었다. 하얀 관세음보살상이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분은 키가 크고 장엄해서 머리가 천장까지 닿을 정도였다. 입정하지 않은 채 관세음보살상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남동생을 흘끗 쳐다보았지만, 그는 아주 깊이 잠든 듯했다. 나는 그를 부르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 상만 바라보았다. 숨이 막힐 듯했다. 방 안이 너무 고요해서 내 호흡 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 상이 사라지고 방 안은 캄캄해졌으며, 방 밖에서는 바다의 파도 소리만 잇따라 들려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관세음보살께서 이렇게 모습을 나타내신 것이 무슨 인연일까 하고 조금 이상하게 여겼을 뿐이다. 그러다 곧 다시 잠이 들었다.
보타산에서의 일정은 원만하게 마무리되었다. 사부님의 분부대로 섬 안의 모든 사찰을 두루 참배한 것 외에 남는 시간은 모두 좌선하며 선정을 닦는 데 썼다. 보타산에서는 내 몸의 생리적 기맥에 어떤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여기서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나는 대략 십 대 때쯤 자주 자신이 갑자기 커졌다 작아지는 것을 알아차리곤 했다. 그것은 그저 이상한 느낌일 뿐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적도 한 번도 없었다. 나이가 든 뒤에는 가끔 한 상 가득한 사람들과 밥을 먹다가 문득 정신이 나가면, 갑자기 눈앞의 사람들이 전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곤 했다. 어떤 이는 개나 고양이, 돼지였고, 어떤 사람은 꼬리가 의자 위에서 흔들흔들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일이 놀랍다고 느끼지 않았고, 다만 자주 감탄했다. 생명이란 정말 신기해서, 어찌 눈이 한번 어른거리기만 하면 이 세상이 그렇게 달라져 버리는 것일까.
사부님이 나에게 선정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지 한동안 지나자, 나는 갑자기 사람의 몸속 뼈와 장기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아서, 때로는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을 때는 눈앞에 온통 사람의 심장과 간과 비장과 폐가 가득해 매우 짜증이 났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천안통이다. 네 천안의 기운이 부족해서 아직 불안정한 것이니, 앞으로는 안정될 것이다.
과연 내 정력이 강해짐에 따라 나는 마음대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보고 싶지 않을 때는 천목을 닫아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불교의 오안육통에 대해 설명을 마치신 뒤, 나는 자신에게 일어난 여러 현상들을 평온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신통에 관한 문제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신통을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 첫째, 네 맥도가 아직 완전히 뚫리지 않았고, 완전한 전환은 말할 것도 없다. 신통을 쓰면 기운 소모가 매우 커서, 오히려 기운을 모으기가 더 어려워지고 생리적인 전환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없다. 둘째, 신통을 가지고 장난치면 바깥의 마를 불러들이기 쉽고, 남의 인과에 끼어들게 된다.” 내가 “그런데 경전에 나오는 많은 보살들은 신통을 자유자재로 부리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사부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가 공성을 증득하면 어떻게 놀든 다 괜찮다. 게다가 네 것은 아직 신통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조그마한 기능일 뿐이다.” 나는 당시 신통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그마한 기능일지라도 그것만으로도 쉽게 불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되고, 수행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경계를 보게 되면 도를 닦는 믿음이 더욱 굳건해질 테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로움과 폐해가 있기 마련이라, 작은 신통이 있으면 오히려 더 쉽게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다. 마음속의 탐진치만의를 내려놓는 일은 신통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결국 습기를 끊고 지혜를 여는 데 이르지 못한다면, 아무리 신통이 크다 해도 마음과 몸의 자재를 얻을 수 없고, 마음대로 신통을 부릴 수도 없을 것이다……
보타산에서 돌아온 뒤 집안은 모든 것이 평온했고, 사람마다 제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가장 큰 수확이라고 느낀 것은 마음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마음가짐이 점점 더 평화로워진 것이었다. 그동안 나는 불경을 본격적으로 많이 읽기 시작했다. 살 수 있거나 빌릴 수 있는 불교 경전이라면 무엇이든 목말라하듯 읽었다. 《금강경》, 《묘법연화경》, 《원각경》, 《능엄경》, 《능가경》, 《대열반경》, 《육조단경》, 《오등회원》, 그리고 남회근, 원음노인, 티베트의 몇몇 린포체의 법문록과 유교·도교의 경전 몇 가지도 읽었다. 나는 책에 담긴 뜻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고, 도무지 기억하지도 못했다. 누군가 나에게 능엄경이 무슨 내용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능가경의 내용을 말해 버릴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무엇을 얻었는지는 나 자신만이 안다. 경전을 읽을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뻤다. 그 기쁨은 마치 좀도둑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보물을 훔쳐 낸 듯한 것이었다… 그리고 책마다 단 한 문장이라도 그때의 내 마음 상태와 맞아떨어져 내 마음속의 문제를 풀어 주면, 나는 곧 마음속의 매듭이 갑자기 풀린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활짝 피어나는 듯했다. 그것은 막혔던 것이 탁 트이고 정수리에 제호를 부어 붓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불경의 바다에 흠뻑 취해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 무렵 내 몸에서도 동시에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한동안 격심한 두통이 왔다. 나는 안으로 들여다보니 머릿속의 맥도가 전부 붉게 변해 있었는데, 마치 달궈진 강철 파이프 같았다. 두통은 급성 뇌막염에 걸린 듯할 만큼 심해서, 크게 숨을 쉬거나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고, 내 정수리에 살로 이루어진 연꽃이 피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꽃잎 하나가 벌어질 때마다 마음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한동안 이어졌다… 연꽃이 마침내 활짝 다 피자, 정수리의 기맥이 움푹 패어 마치 레이더 수신기처럼 변했다.
이 과정은 대략 보름 정도 계속되었다. 스승님께서 기맥이 전환되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일러 주셨기 때문에, 나는 놀랍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두 번째 현상은 간헐적으로 밥을 먹고 싶지 않아서 물만 마시고 가끔 과일을 먹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7일, 어떤 때는 보름이었다. 어쨌든 나는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겼다. 배가 고프면 먹고,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내 몸의 변화에 대해서는 마음을 별로 쓰지 않았다.
그 무렵 불교를 믿거나 기공을 수련하는 친구들이 자주 나를 찾아왔다. 나는 열정적으로 맞이하는 것 외에는 그들과 불교의 여러 이론을 한껏 늘어놓으며, 원융하지 못한 자신의 불교 견해를 억지로 그들에게 밀어 넣으려 했고 불교를 믿고 불법을 닦고 증득하도록 극구 권했다. 그 사이에 그들이 끼어들 틈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불법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은 정말로 ‘인욕계’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모두 인내심을 갖고 내가 그들의 귀를 한 차례 한 차례 폭격하는 것을 들어 주었다. 점심때가 되거나 아주 늦어서야 그들은 예의를 갖추어 작별을 고했다. 나는 거듭 만류하면서 때로는 자신이 보기에 아주 가치 있는 불교 경전 몇 권을 억지로 쥐어 주며 읽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책이 너무 좋으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다음에 오면 함께 토론하자고 말하곤 했다.
나는 내 친구들이 어떻게 그때의 그런 광적인 열정을 참아 내고 나와 절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결국, 거의 모든 친구들이 불교를 믿기 시작하거나 선정 수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스승님의 말씀대로 되도록 신통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때로는 좋은 친구들에게 장난삼아 쓰기도 했다. 이를테면 그의 장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보거나, 그가 지난 생에 겪은 일들을 보는 식이었다. 어느 날 아주머니 한 분이 놀러 왔는데, 반쯤 농담 반쯤 진담으로 자기 부인과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봐 달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자궁을 살펴보았는데, 그 안에 검은 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말했다. “자궁에 악성 종양이 자랐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후회했다. 어쩌면 이렇게 경솔했을까! 그 무렵 내가 병을 살피던 경험으로는, 사람 몸속의 종양과 낭종은 대개 두 가지 색으로 나뉘었다. 검은색에 가깝거나 붉은색에 가깝거나. 검은색은 대체로 악성 병변 쪽에 가깝고, 붉은색은 양성 쪽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은 진료한 지 오래되어 알게 되었는데, 어떤 양성 종양은 형성된 지 너무 오래되고 환자의 기혈이 너무 허약해지면 짧은 시간 동안 새까만 빛을 내기도 한다. 한동안 약을 먹으며 조리하면 종양의 빛은 다시 붉은색으로 변하고 점차 수축된다.
그 아주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곧 안색이 확 변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이렇게 약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나는 급히 그녀를 달래며, 나도 때로는 정확히 보지 못하니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해 보라, 정말 내 말대로라면 일찍 발견한 것도 잘된 일이라고 했다. 그녀는 내 위로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울면서 그냥 가 버렸다. 나는 풀이 죽어 집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동안 본 환자들이, 내가 무심결에 병을 찾아내기만 하면 대개 그 결과가 매우 정확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그녀가 조금 안쓰러웠고, 앞으로는 남의 병을 봐 주지 말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설령 찾아낸다 해도 남을 치료해 줄 수는 없어서, 그저 그들에게 고통만 더할 뿐이었다. 하지만 수행자로서 남의 병을 보고도 알려 주지 않으면 양심이 편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혼자 한참을 멍하니 앉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좋은 의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옛날의 이시진, 화타, 편작처럼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소원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밤, 나는 좌선하고 있었는데 스승님께서 오셔서 한 스승님을 만나러 데려가겠다고 하셨다. 선정 속에서 한동안 걸어가자 스승님께서 나를 한 무덤 앞으로 데려가셨다. 묘비에는 ‘이시진의 묘’라고 쓰여 있었다! 스승님께서 무덤을 향해 절하라고 하셨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묘비를 향해 절을 했다. 그런데 무덤이 갑자기 터지더니 한 사람이 무덤 속에서 뛰어나와 내 손을 잡고 외쳤다. “나는 너를 오래 기다렸다! 약초를 알아보러 데려가마.” 나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에게 약초가 무성한 산등성이 앞으로 끌려갔다. 그는 흥분해서 풀 한 포기 한 포기 그 이름을 알려 주었다. 그는 아주 빨리 말했고, 나는 열심히 기억하려 애썼다…
출정한 뒤, 나는 선정 속의 경험을 떠올리며 의문으로 가득 찼다. 혹시 방금 혼침에 빠져 잠이 들어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이시진은 천 년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도 환생하지 않았단 말인가? 하지만 내 머리에는 몇 가지 약초의 이름과 생김새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종이에 간단히 그려 두고 내일 동생에게 물어보려 했다.
다음 날 내 동생은 내 말을 듣고 내가 그린 도안과 약 이름을 본 뒤 말했다. “《본초강목》을 찾아볼게.” 과연 그는 책에서 내가 말한 이 몇 가지 약의 이름을 찾아냈고, 옆에 그려진 그림도 내가 그린 것과 거의 같았다. 그는 이 몇 가지 약초는 잘 쓰이지 않아서 자신도 이 약들의 이름을 잘 모른다고 했다. 선정 속에서 사부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시진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에게 중의학 지식을 전수받아라.” 그때부터 이시진은 나의 두 번째 스승이 되었다. 나중에 또 한 분의 스승이 오셨는데 성이 황(黃)이셨고, 나에게 침구만 가르쳐 주셨다. 나는 예전에 사부님을 따라 배울 때처럼 매일 입정한 뒤 이시진의 중의학 이론 강의를 듣고, 황사부의 침구 강의를 들었다. 그들은 강의 속도가 매우 빨랐고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풍성했다. 예를 들어 이시진이 약초 한 포기를 설명하면 그 약초가 생생하게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잘 보지 못하면 그 약초는 순식간에 수천 배로 확대될 수 있었다. 이시진이 약의 성질이 차고 맛이 시다고 설명하면 내 위장에는 동시에 차갑고 신 느낌이 나타났다. 약이 다니는 경락을 설명할 때면 내 앞에 살아 있는 인체가 나타났다. 다만 그는 투명해서 나는 서로 다른 배합과 용량에 따라 약이 그의 기맥을 따라 운행되는 상황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황사부가 침구를 가르칠 때도 내 앞에는 똑같이 투명한 인체가 나타났다. 그의 기혈이 순환하고 있었고, 경락의 분포는 어두운 빛으로 이어져 있었으며, 혈자리는 특히 밝아 반짝이는 광점을 이루었다. 이시진과 황사부는 나와 교류할 때 사부님처럼 편하지 않아서, 우리는 서로 상대방이 전하려는 뜻을 알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들의 강의를 들을 때 내 머릿속은 하얘졌고, 출정한 뒤에는 그들이 강의한 몇 가지 방법과 이미지만 기억할 뿐 그들이 강의한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조금 걱정되어 사부님께 여쭈었다. “이렇게 중의학을 배워도 출정한 뒤에는 써먹을 수 없잖아요.”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괜찮아. 그들이 강의한 것은 이미 프로그램으로 짜여 네 뇌에 입력되었으니, 장차 네가 쓸 때가 되면 자연히 흘러나올 거야.” 나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매일 입정한 뒤 강의를 들으러 갔다.
이런 공부는 반년이 넘게 계속되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면서 중단되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돼지비계 열 근을 사 와서 기름을 내라고 했습니다. 보타산에서 돌아온 뒤로 나는 고기를 봐도 더 이상 역겹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는 남편과 가정부, 아이 모두 고기를 먹었고, 채식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습니다. 오전에 나는 돼지비계를 전부 프라이팬에 넣고 가열했습니다. 비계가 전부 기름으로 녹자 그 기름을 큰 대야에 부었습니다. 그때 기름은 이미 푸른 연기가 나기 시작할 만큼 달궈져 있었고, 대야 가득 부어졌습니다. 기름 대야를 밥을 짓는 조리대 위에 두었는데, 나는 이 자리가 너무 낮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아이가 놀러 와서 실수로 대야를 건드려 엎지르기라도 하면 결과가 참담할 테니까요. 그때 내 머리는 흐릿해진 듯했습니다. 나는 그 가득 찬 기름 대야를 들어 올려 아파트 창턱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창턱은 손바닥만 한 너비라서, 아이조차 대야를 창턱에 올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렇게 하고 말았습니다.
대야를 올려놓자마자 그것은 한쪽으로 기울었고, 기름이 흘러내릴 때 나는 손을 내밀어 대야를 붙잡으려 했습니다. 그 결과 기름은 전부 내 오른팔에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비명을 질렀고, 어떻게 부엌에서 거실까지 뛰어나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왼손으로 오른팔을 부여잡은 채 거실에 앉아 아파서 울고 있었습니다. 오른팔은 순식간에 새빨개졌고, 오른손은 닭발처럼 오그라들었습니다. 기름의 독이 한 겹 한 겹 속으로 파고들수록 몇 초에 한 번씩 뼛속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엄습했습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함부로 구르며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체면을 돌볼 겨를도 없었고 선정(禪定)의 힘 같은 것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가정부는 겁에 질려 복도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며 화상 연고를 얻으러 다녔습니다.
화상 연고를 조금 바르고 나니 잠시 통증을 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득 이시진이 떠올라 나는 재빨리 침실 문을 닫고 좌선을 했습니다. 나는 정작 삼매에 들지는 않은 듯했지만, 이시진이 주전자 하나 가득 끓인 물을 내 팔에 모두 쏟는 것을 또렷이 보았습니다(이것은 정경(定境)으로, 흉내 내서는 안 됩니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 둔 붉고 끈적한 약 한 그릇을 꺼내 내 팔에 조금씩 발라 주었습니다. 팔 전체가 점점 서늘해지면서 통증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때 손과 팔에 큰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시진은 약을 바르며 나를 위로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리 심한 것이 아니니 곧 나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오른손이 펴지지 않아 장애인이 될까 봐 몹시 두려웠습니다. 스승님이 저를 보러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일은 네 겁수(劫數)다. 우리가 애써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지만, 너는 그래도 한바탕 육체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걱정 마라, 반드시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그러고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네가 기름에 덴 일에는 뜻밖의 소득도 있었다. 네 그 한 번의 귀청 찢는 비명 덕분에 내 친구 한 분이 출정(出定)하셨다.” 그때 나는 선정 속에서 갑자기 어느 산굴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동굴 안의 포단(蒲團) 위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도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뼈대가 기이하게 생겼고, 두 눈에 정기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스승님께 말했습니다. “큰일을 그르칠 뻔했네!” 그는 일어나더니 곁의 돌받침 위에 놓인 옛 장정의 책 한 권을 향해 깊이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공손하게 그 책을 집어 저에게 주었습니다. 책 표지에는 《황제내경》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앞에 앉았고, 그는 책의 내용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렴풋이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도 모른 채 선정에서 깨어났습니다…
스승님들의 도움에 더해 나 스스로도 병원에서 화상 연고를 좀 샀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큰 물집은 모두 사라졌고, 손가락도 자유자재로 쭉 펴졌지만 피부는 헐기 시작했습니다. 스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화상의 기름 독이 네 몸속의 독을 끌어내어, 그 독이 모두 네 손으로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아마 삼 년 동안 간헐적으로 배출될 것이고, 좀 가려울 테니 네가 참아 내야 한다.” 나는 가려운 것이 아픈 것보다는 한결 견디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려움을 멎게 하는 약을 좀 사면 그만이지, 너무 급하면 긁기라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 내 결론은 너무 성급했습니다!
그 가려움은 정말 수천수만 마리의 개미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손과 팔이 가려워지면 온몸이 함께 반응해 혀와 심장까지 가려웠습니다. 침대에서 온몸을 굴리며 뒹구는 것 외에는 도무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플 때는 몇 분이라도 앉아 참을 수 있었지만, 가려울 때는 단 1초도 좌선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가려움 발작에는 규칙성이 있었습니다. 보통 오시(午時)와 자시(子時)에 가장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밤에는 되도록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자시가 되면 아무리 깊이 잠들어 있어도 한순간에 가려움에 깨어나곤 했습니다. 그 무렵 남편은 출장 중이어서 늙은 가정부 한 분만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분의 돌봄에 무척 감사했습니다. 한밤중에 내 신음 소리를 듣기만 하면 그분은 재빨리 일어나 주전자의 끓는 물을 대야에 가득 붓고 소금을 한 움큼 넣었고, 나는 조금씩 팔을 그 물속에 담갔습니다. 그때 살은 조금씩 짓물러 있었지만, 가려운 나머지 끓는 물에 데는 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가려움 발작은 매번 대략 30분가량 이어졌고, 가려움이 멎고 나면 헌 피부에서 누런 독물(毒水)이 흘러나왔습니다. 독을 빼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스승님들은 곁에서 지켜보며 위로만 해 주셨습니다. 한 번은 스승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칼로 이 팔을 잘라 버리고 싶을 지경이에요.” 스승님은 애처롭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셨습니다. 이번에는 스승님도 나를 도와줄 방법이 없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스승님은 아주 기쁜 표정으로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나를 보게 하셨습니다. 스승님은 이 사람을 스승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보아하니 이분은 스승님보다 훨씬 젊어 보였습니다. 그는 내 손을 살펴보더니 “시작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승님은 나를 조용히 앉게 하셨고, 두 분은 내 앞에 앉으셨습니다. 막 마음을 가라앉혔을 때 고금(古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스승님 앞에는 이미 고금이 놓여 있었고 스승님께서 연주하고 계셨으며, 다른 한 스승님은 품에 비파를 안고 있었습니다. 스승님의 고금 소리는 낮고도 선율이 흐르는 듯했고, 다른 스승님의 비파에서는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우우우’ 소리만 흘러나왔습니다.
찰나의 순간, 두 스승님의 악기에서 무수한 금빛 광선이 뻗어 나와 나를 감쌌습니다. 나는 갑자기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고, 내 맥도(脈道)에서 강렬하고 눈부신 흰빛이 한 줄 한 줄 뻗어 나와 금빛과 어우러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악기 소리는 점점 더 격렬해졌고, 나는 수만 갈래 금빛에 꿰뚫려 녹아내리며 빛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순간 나는 두 스승님이 오음(五音)으로 내 몸의 독을 빼내고 계신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고,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두 스승님은 모두 자리를 떠나 계셨습니다. 내 팔을 살펴보니 이미 좀 나아져 있었고, 그 뒤로 가려움의 정도는 크게 줄었습니다. 화상을 입은 부위만 가려울 뿐, 다른 곳은 함께 가려워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스승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습니다.
사부님은 나중에 내게 말씀하셨다. 팔의 독이 조금 더 빨리 배출되도록 하기 위해 태극권을 연습해도 좋다고. 나는 스승을 찾아뵙고 몇 달 동안 태극권과 태극검을 배웠다. 비록 정확하게 치지는 못했지만, 이것도 내 팔이 회복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사부님이 두 번째로 나를 부르신 것은 오대산을 순례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집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대산은 우리 집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데다 기간도 짧아 일주일만 다녀오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대산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저 놀러 가서 관광 기념품이나 사 오고 온 것이었으니 이번은 물론 달랐다. 큰언니도 매우 흥이 나서 일주일 휴가를 내고 나와 남동생과 동행해 주었다. 오대산에 도착한 뒤 우리는 먼저 작은 여관을 잡아 묵으면서 보살정을 참배했다. 보살정의 대웅보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한 동자가 앞에 나타나 말했다. “문수보살님은 오늘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내일 보름달이 뜰 때 돌아오실 거라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차례로 대라정을 순례했다.
다음 날 저녁은 마침 음력 보름이었다. 나는 문수보살을 본 적이 없으니 오늘은 꼭 그분이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려 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밤 11시부터 창문을 향해 앉아 좌선을 시작했다. 창유리 너머로 맑은 밤하늘과 허공에 걸린 둥근 달이 보였다. 나는 내가 입정에 든 것인지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조차 잊은 채, 문득 달 쪽에서 나를 향해 움직이는 듯한 작은 검은 점 하나를 보았다. 순식간에 창유리가 하얀 빛으로 뒤덮이더니, 문수보살이 푸른 사자 위에 단정히 앉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너무 아름다웠다! 예전에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천녀였다면, 문수보살의 현현에 비하면 그것도 너무 속된 것이었다. 몽롱한 빛 속에서 문수는 남자 몸으로 나타났는데, 의복과 장식이 장엄하고 화려했으며, 손에는 가로로 든 피리 한 자루를 입 앞에 대고 불고 있었다. 푸른 사자는 그의 다리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피리를 부는 듯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보살님은 무엇을 부르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문수가 말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불고 있노라…” 문수는 내게 모든 일이 잘 되고 있는지 묻는 듯했다. 나는 아주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일 다섯 대를 순례할 생각이라고 그분께 말했다. 십여 분 후, 문수보살의 형상은 방에서 사라졌다.
오대산의 다섯 대는 각각 다섯 봉우리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문수의 다섯 가지 지혜를 상징한다. 대라정을 순례하는 것은 소조대에 속하고, 다섯 봉우리 꼭대기를 모두 순례하는 것이 대조대다. 그 무렵 다섯 산에는 모두 구불구불한 산길을 닦는 공사가 한창이라 자동차가 올라갈 수 없었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를 빌렸는데, 길이 매우 험했다. 북대는 삼륜차로도 올라갈 수 없었지만, 나머지 네 대는 차를 타고 꼭대기까지 갈 수 있었고 산 하나에 하루씩 걸렸다. 닷새가 지난 뒤 우리 셋은 모두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껍질이 한 겹 벗겨졌다. 다섯 대를 순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길가의 사찰들도 모두 참배했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찾을 수 있는 사찰은 무엇이든 반드시 들어갔고, 폐허만 남아 있는 곳이라도 사부님은 나에게 가 보라고 하셨다. 사부님 말씀으로는 좋은 인연을 널리 맺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 무렵 내 손은 매일 저녁 돌아와도 여전히 가려웠고, 피부에는 작은 물집이 빽빽하게 가득했다. 게다가 화상을 입지 않은 왼손도 오른손과 마찬가지로 피부가 붉어지고 짓무르며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가려움의 정도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사부님은 독이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하시며, 평소에는 밥을 적게 먹고 먹지 않을 수 있으면 아예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물을 많이 마시고 과일과 채소를 먹고, 좌선도 더 많이 하며, 되도록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화내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야 몸속에 새로운 독이 덜 생긴다고 하셨다.
오대산에서 돌아온 뒤 내 몸은 간헐적으로 불편함을 느꼈다. 자주 먹고 싶지도 않고 마시고 싶지도 않았으며, 온몸이 나른하게 힘이 빠졌고 낮은 열도 자주 났다. 하지만 침대에서 며칠 쉬면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사부님은 기맥이 전환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한 사람의 기맥이 전환을 마치려면 정도가 각기 다른 탈태환골을 백 번도 넘게 겪어야 하고, 전환에 필요한 에너지는 지구 몇 개를 폭발시킬 만큼이라고 하셨다. 나는 매일 두 시간 남짓 좌선을 했다. 한동안 사부님은 하루 좌선 시간을 최소 여덟 시간으로 정하셨기에, 나는 되도록 시간을 쪼개 앉았다. 하루 좌선 시간을 합쳐 여덟 시간이 되면 그날은 임무를 완수한 것으로 쳤다.
하지만 사부님은 그 정도 에너지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주된 이유는 좌선을 마치고 일어난 뒤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이면서 좌선으로 모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다시 소모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기맥 전환은 반드시 먼저 마음의 생각부터 전환시켜야 한다. 마음의 생각이 비워지는 만큼 에너지가 모인다. 마음이 머무는 바가 없게 되면, 그제야 에너지가 크게 새지 않는다.” 평소 내가 좌선으로 모은 에너지는 육근이 일부를 소모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대부분을 소모해 버린다. 우리가 하루 종일 조용히 있을 수 있다 해도 마음에 걸림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껏해야 기맥의 일부를 통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전환하지 못하면 통했던 기맥도 다시 막히게 된다. 우리는 늘 이 과정 속을 맴돌곤 했다.
내 자신의 수행 체험을 통해 나는 처음에는 밀교에서 말하는 중맥·좌맥·우맥을 온전히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피로 가득 차 있고, 온갖 맥이 감싸고 있으며, 장기들과 뒤엉켜 있어 맥도가 매우 더럽다. 수행의 공력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맥도가 정화되기 시작하고, 그때서야 조금 모양이 잡히며 때로는 통하기도 한다. 계속 수행해 나가면 맥도가 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우리가 에너지를 일정 수준까지 모으면 그것이 빛으로 전환된다. 그때가 되어서야 좌맥·중맥·우맥이 완전히 나타나는데, 책에 적힌 것과 똑같이 중맥은 푸른빛과 붉은빛을 띤 빛을 발한다. 우리의 모든 장기는 맥 곁에 붙어 생겨났기 때문에, 기맥이 통한 뒤 장기가 가볍게 위치를 옮기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 움직임이 너무 미묘해서 밖에서는 전혀 알아차릴 수 없다. 온갖 맥과 세 맥이 주로 서로 얽히는 곳이 곧 맥륜인데, 이 맥륜들은 기맥의 전환에 따라 각기 다른 정도로 열린다. 맥륜 하나가 열릴 때마다 서로 다른 신통이 나타난다. 보통 사람은 전부 열기가 어렵고, 수행을 잘해도 맥륜의 일부만 열릴 때가 있다.
우리 온몸의 맥도는 지구 위의 강들처럼 많아서 다 셀 수가 없다. 만약 기맥이 모두 통하고 전환까지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가 동시에 빛으로 바뀐다. 그것은 이미 오안육통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니, 모이면 형체를 이루고 흩어지면 기운이 되는 경지다.
심신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먼저 심의식(心意識)의 전환을 통해야 비로소 생리적 전환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외부의 힘이 도와주면, 때로는 생리적 전환을 통해 거꾸로 심의식의 전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나의 수행 증득 과정은 바로 후자에 속한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선정(禪定) 중이거나 꿈속에서 자주 작은 동물들이 찾아오거나 도움을 청하는 일이 있었다. 대개는 재액을 피하거나 그들을 초탈시켜 달라는 것이었는데, 뱀과 여우가 많았다. 그들은 자주 인삼이나 영지, 보물을 가져와 나에게 보답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정중(定中)에서 이것들 또한 먹으며 자신의 에너지를 늘리기도 했다. 한 번은 짧고 굵은 검은 뱀 한 마리가 보물을 바치러 왔는데, 입에서 짙은 초록색 구슬 하나를 토해 냈다. 나는 그것이 사단(蛇丹)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그것을 가져가면 그 뱀은 죽고 말 것이다. 이때 “얼른 받아서 먹어라!” 하는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대로 행했다. 갑자기 내 앞에 만 마리가 넘는 뱀과 거북이들이 나타났는데, 모두 매우 흥분한 듯 기뻐하며 날뛰었다. 사왕(蛇王)은 그들이 나에게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한 습지에 수백 년 동안 살아왔는데, 지금 재액이 닥쳐 온 가족이 모두 멸망하게 되었다며 나에게 그들을 구해 달라고 간청했다…
이 일이 있은 뒤 사부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이런 동물들이 와서 무엇이든 바치면 모두 받아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연을 맺을 수도 없고 그들을 초도(超度)할 수도 없다고. 게다가 나의 수행 증득 과정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서, 짧은 시간 좌선만으로는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들이 바치는 것은 모두 백 년, 심지어 천 년 동안 쌓인 에너지이니, 먹으면 곧바로 섭수(攝受)할 수 있다고. 다만 몇 가지 폐단이 있었다. 이런 에너지가 내 몸속에 직접 쌓이면, 짧은 시간 동안 나와 하나로 융합되지 못하고, 또 일부 독소도 배출해야 하므로 불편함이 따랐다. 에너지가 너무 크면 자신의 맥도(脈道)가 때로는 짧은 시간 안에 전환되지 못해 답답하고 견디기 힘들었으며, 심지어 오한과 열이 번갈아 나고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사부님은 나에게 에너지를 조절하고 방출하는 간단한 방법들을 가르쳐 주셨다…
내 호법(護法)인 사자왕을 말하는 것을 잊었다. 나는 그를 무척 좋아했다. 사부님이 그를 데려오셨는데, 그는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고 3년 넘게 나를 따라다녔다. 밤에 내가 잠들면 그는 조용히 내 침대 곁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온몸의 털이 하얗고, 털 한 올 한 올이 강철 바늘처럼 뻣뻣했으며, 몸길이는 2미터가 넘었다. 내가 좌선할 때면 그는 내 주변을 오가며 순찰했다. 한 번은 선정 중에 몹시 빠르게 달리는 영리한 녀석이 갑자기 내 좌석 앞에 놓인 염주 한 줄을 낚아챘다.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사자왕은 이미 쫓아가 그 녀석을 허리 부분을 물어 두 동강이 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마음속으로 사자왕에게는 자비심이 조금도 없다고 탓했다. 염주 한 줄일 뿐인데, 왜 그렇게 처참하게 물어뜯었을까. 그러나 사자왕은 여전히 제멋대로 굴었고, 내 어떤 훈계도 전혀 듣지 않았다. 한 번은 꿈을 꾸고 있는데 갑자기 사자왕이 그 거대한 머리를 내 얼굴 앞에 들이밀고, 방울처럼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그 얼굴은 정말 온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얼굴이었다. 나는 겁에 질려 숨조차 쉬지 못했는데, 그는 좀처럼 머리를 내 앞에서 옮기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그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불러 해결해 달라고 했다… 그 후로 사자왕은 다시는 그러지 않고 아주 온순해졌다. 나는 때때로 손으로 그의 등을 쓰다듬었고, 밤에 침대에 누우면 습관처럼 손을 그의 등 위에 얹곤 했다. 그가 내 침대 곁에 있었지만 등은 침대보다 한 뼘쯤 높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찾아오는 작은 동물들에게 아주 다정했다. 내가 볼일이 있으면 그는 그들을 조용히 곁에서 기다리게 했다. 3년 후, 내 곁의 호법은 위타보살로 바뀌었고, 사자왕은 나를 떠났다. 위타보살의 호지는 사자왕과 달랐다. 나는 그를 언제나 볼 수는 없었고, 다만 선정 중이거나 평소에 갑자기 두려움이 일 때면 그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나, 나는 곧바로 아무것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한 번은 선정 중에 큰 신선이 보내온 단약(丹藥)을 먹고 온몸에서 빛이 났는데, 이때 위타가 갑자기 내 곁에 나타나 나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물었다. “어째서 머리에서 푸른 빛이 나는가?” 나는 웃으며 단약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위타는 진지하게 말했다. “다음부터 단약을 먹을 때는 말씀 좀 하세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사부님에게는 늘 곁을 따르는 제자가 80여 명 있었다. 처음으로 나를 사부님께 뵈러 데려간 젊은 스님이 바로 대사형(大師兄)이었는데, 그는 이사형(二師兄)과 함께 자주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평범한 출가자 모습을 하고 나를 ‘막내 사매’라고 부르며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었다.
동생의 진료소는 당시 이미 3~4년째 운영되고 있었지만, 내가 수행 증득을 시작한 이후로 그는 자주 나와 동행하느라 진료소는 자주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진료소 운영에 다소 소극적인 마음이었다. 그는 내가 병을 진찰하면 그렇게 정확한데, 자기는 맥을 짚어도 도저히 나처럼 정밀하게 할 수 없다며, 자신은 좋은 의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환자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라며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태도가 좋고 진료비가 저렴했으며, 진료소를 찾는 환자들도 대부분 감기나 열이 나는 정도여서 진료소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 나았기 때문에, 그를 찾는 환자는 오히려 점점 더 많아졌다. 진료소 근처에 사는 주민들도 심심하면 진료소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바둑을 두기도 했다. 모두들 기분이 좋았다. 동생도 그렇게 해서 진료소를 천천히 계속 운영해 나갔다.
한 번은 어머니가 병이 매우 중해 일주일 동안 자리에 누워 계셨고, 일주일 내내 링거를 맞았지만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기억하기 시작한 때부터 온몸에 병을 달고 사셨다. 당뇨병, 선천성 심장병, 심한 신경쇠약, 장유착, 위하수, 신우신염 등으로, 하루도 고통 속에 살지 않은 날이 없었다. 동생은 어쩔 줄 몰라 했고, 나도 몹시 초조했다. 나는 조용히 부처님 앞에서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어머니를 구하려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일까. 그날 밤, 나는 한밤중에 갑자기 꿈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세 시가 조금 넘었는데, 잠이 전혀 오지 않아 일어나 좌선을 했다. 이때 내 머릿속에 갑자기 흰 빛으로 가득 찬 은빛 화면이 나타났고, 그 위에 처방 하나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서둘러 종이와 펜을 가져와 그것을 받아 적었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으리라 느꼈다. 다음 날 나는 신나서 그것을 동생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써 낸 처방이었다. 동생은 보고는 말했다. “어떤 약은 용량이 상용량을 훨씬 넘고, 비상(砒霜)의 용량도 너무 많아요.” 어머니께 먹여야 할까 말까?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때 어머니가 방 안에서 어쩐 일인지 우리의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마라, 나에게 약을 지어다오. 어차피 엄마는 평생 약을 먹어 왔고 이 병도 낫지 않으니, 이번에는 네 처방을 시험해 보자.” 동생은 갑자기 결심하고 약을 지었다. 잠시 후 약을 달여서 어머니 앞에 내놓았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졸이며 어머니가 약을 드시고 다시 누우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어머니는 잠이 드셨는데, 보아하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어머니는 아주 깊이 주무셨다. 아마 며칠 동안 병으로 제대로 자지 못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깨어나 보니 이미 정오가 되어 있었다. 기운이 훨씬 좋아지셨고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활동하셨다. 세 첩의 약을 다 드시고 나니 평소와 같아지셨다. 그래서 내 어머니가 내 약을 처음 먹은 사람이 되셨다.
어머니는 일단 회복되어 나는 매우 기뻤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나 자신을 의사와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선정 속에서 배운 것은 출정(出定)한 뒤에 하는 일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이시진, 황사부와도 자주 교류했다. 그들은 중음신(中陰身)이었기 때문에, 나는 집에 그들을 위한 위패(位牌) 몇 개를 모셔 두었다. 나는 또한 그들이 중음신의 몸으로 선정을 닦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이시진은 좌선할 때마다 자기 방석 주위에 촛불을 한 바퀴 두르고, 앞에는 금테가 둘러진 노란 약사발을 놓았다. 한 번은 그가 좌선하는 도중에 갑자기 볼일이 있어 나갔는데, 나는 몰래 그의 자리에 앉아 체험해 보고 싶었다.
눈을 감자마자 내 심장 박동 소리가 너무 커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울렸고, 피가 흐르는 소리는 시냇물이 흐르는 것 같았으며,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도 들렸다. 평소에도 선정 중에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소리가 이렇게 크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시끄러워서 도저히 한순간도 조용히 있을 수 없다고 느꼈고, 앞에 있던 약사발에는 수없이 많은 금이 갔으며, 내 곁의 촛불도 바람에 흔들리는 듯 몇 개가 꺼졌다. 나는 깜짝 놀라 그 방석에서 얼른 도망쳐 내려왔다.
이시진은 그 뒤로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가 좌선할 때 나는 몰래 그 약 사발을 살펴보았지만, 사발은 여전히 멀쩡했고 깨지지 않았다. 내가 사부님께 여쭈니, 사부님은 내가 좌선할 때 기가 멈추고 맥이 멈추는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면 그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시진은 또한 검술을 익혔는데, 나는 선정 속에서 그가 검을 휘두르고 서예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느 날, 이시진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승려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도 깎였으며 계파까지 찍혀 있었다. 이시진이 출가했다고?! 평소 그가 드러내는 모습은 고대 궁중 의사의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황사부가 말씀하셨다. “이사부는 수행을 이루었습니다.” 나는 수행을 이루었다는 것이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인지도 모른 채, 기뻐하며 과일을 사고 향을 피우고 술을 차려 공양했다. 황사부와 이사부 두 분 모두 술을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이시진은 다시 의사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방식이 더욱 평화롭고 너그러워졌음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점점 더 상호가 장엄해져 미간에서 늘 붉은 빛이 났다.
그 후에도 몇 분의 사부님이 더 오셨는데, 모두 고대의 명의들이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으로는 티베트의 약왕 한 분과 일본의 의사 한 분이 있었다. 나는 사부님이 오실 때마다 위패를 모셔 공양했다. 그들은 모두 중음신이었다. 나는 선정 속에서 그들이 모여 어떤 약방문을 연구하거나 수행에 관한 일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는 모습도 자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께 약방문을 하나 써 드린 그 일 이후로, 나는 집안에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집안사람들은 누가 몸이 불편해도 더 이상 내 동생을 찾지 않고 나를 찾았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약방문을 써 줄 때마다 낮에 진찰을 하고도 한밤중이 되어서야 처음 그랬던 것처럼 머릿속에 약방문이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자 주변의 친구와 친척들도 나를 찾아 진찰을 받았다. 점차 나는 진찰을 마치면 환자의 병세가 내 뇌리에 입력되고, 그때 알맞은 치료 처방이 저절로 붓끝에서 흘러나오게 되었다. 처음 붓을 댈 때는 약 이름을 잘못 쓰는 오자도 있었다. 명성이 점점 더 멀리 퍼져 나가면서 나는 어느새 환자들의 포위 속에 빠져들었고, 진료하고 병을 치료하며 사람을 살리는 나의 생애가 시작되었다.
이시진 사부님은 약의 배합에 대해 가르쳐 주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옛날에는 천연 약초가 많았지만 지금의 중초약은 거의 다 인공 재배라 품질이 떨어진다. 게다가 채취와 포제도 엄격하지 않고, 약의 건습 상태도 규범에 맞지 않는데 현대인의 병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처방을 쓸 때는 많은 약을 《본초강목》에 기록된 중초약 상용 용량보다 훨씬 많이 쓰고, 찬 성질의 약이나 귀한 약재도 자주 쓰라고 하셨다. 그는 또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교통이 불편해 남북의 약재 교류가 매우 어려웠고, 귀한 약재는 궁중에만 있어 백성들은 볼 수도 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옛날 민간 명의들이 남긴 탕두에는 값싸고 흔한 약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중약이 매우 완비되어 처방에 쓰는 약은 일반 환자도 대부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약을 쓰는 것은 외워 둔 탕두를 그대로 가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쓰는 약은 일반 중의와 다른 점이 많았고, 독약도 자주 썼다. 그 때문에 환자들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겼다. 즉 당시 나는 그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느라 애를 많이 썼지만, 환자가 내 처방을 들고 병원이나 다른 약국에 가면 약을 다 구하지 못했고, 독약은 증명서까지 필요해 환자가 약을 짓기가 매우 불편했다. 또 어떤 진료소는 책임감 없이 약 품질이 너무 떨어진 약을 쓰고, 심지어 귀한 약재에 가짜 약을 쓰기도 해서 나도 매우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동생이 투자해 내가 자주 쓰는 약 천여 가지를 모두 자기 진료소에 사다 놓았다. 약을 빠짐없이 구하려고 그는 여러 성을 넘나들며 각지의 약재 회사를 찾아다니며 살피고 확인하느라 무척 고생했다.
이렇게 되자 환자들이 약을 짓기가 훨씬 편해졌고, 나도 진료할 때 마음이 놓였다. 또 당시 나는 의료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진료소에서도 진료를 볼 수 없었다. 나를 찾아 진료받는 사람들도 모두 친척이 친구를 데려오고 친구가 또 친척을 데려오는 식이었다. 나는 집에서만 그들을 진료할 수 있었고, 줄곧 어떤 비용도 받지 않았다. 먼 데서 온 친구들은 집에서 먹고 자며 묵어야 했다. 나는 매일 좌선할 시간이 더욱 줄어들었다.
나는 중의학 전공 성인 자학고시에 응시해 순조롭게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받기 전에 내가 무료로 진료해 준 환자는 이미 수천 명에 달했고, 진료 기록도 큰 상자 몇 개나 쌓였다. 진료하는 과정에서 나는 이시진에게 의과대학에서 몇 년 동안 연수를 받아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런 교조적이고 경직된 관념을 절대 머릿속에 넣으면 안 됩니다. 지금 당신은 백지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말해 주는 것만 흡수할 뿐 자신의 견해를 내세워 우리와 맞서지 않을 테니, 우리가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오히려 더 쉽습니다.” 그렇게 나는 중의학원에 가서 공부하려는 생각을 접었고, 동시에 조국의 중의학이 쇠퇴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제 십 수 년의 임상 경험에서 저는 일반적으로 병을 네 가지로 나눕니다.
- 사대부조로 인해 생기는 병, 즉 자연계의 풍·서·습·조와 사람의 감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입니다. 이런 부류의 병은 대개 한약과 양약으로 모두 치료할 수 있습니다.
- 인과병: 이는 생명체가 숙세의 어느 경험을 기억 속에 너무 깊이 새겨 둔 나머지, 환생한 뒤 이번 생의 어느 부위 기맥이 선천적으로 남과 달라져서, 한번 몸의 저항력이 떨어지거나 어떤 인연이 성숙하면 병세가 갑자기 발작하는 병입니다. 이런 병은 서양 의학으로는 대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해 오진과 오치를 하기 쉽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전생은 사자였는데, 전염병에 걸려 죽은 당나귀 한 마리를 먹고 그 자신도 그 병에 옮아 죽었으며, 죽을 때 털과 가죽이 벗겨졌습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 마흔이 조금 넘었을 무렵 갑자기 피부병에 걸렸는데, 병세가 전생에 죽을 때와 똑같아서 온몸에 짧은 시간 안에 커다란 건선 덩어리들이 생겨나 참을 수 없이 몹시 가려웠고, 여러 민간 처방을 먹어도 모두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무심코 당나귀 고기 한 그릇을 먹었는데, 며칠 사이에 피부병이 거의 나았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인과병이지만, 이 사례의 회복은 비교적 특별한 경우입니다.
또 다른 환자는 전생에 일본인에게 붙잡혀 모기에게 먹이로 던져졌는데, 이번 생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맥도에 선천적으로 모기 독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30세부터 온몸과 얼굴에 작은 물집이 생기더니, 긁으면 단단해지고 헐어서 매우 가려웠습니다. 또 한 환자는 전생에 물고기였는데, 철조망 한 토막에 끼어 죽었습니다. 이번 생에 환생한 뒤에도 그 병의 기억이 그의 맥도에 남아 있었는데, 어느 날 허리와 골반이 갑자기 몹시 아팠습니다.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와 CT 검사를 해도 아무 이상이 없어 신경계통이나 류머티즘 등의 병으로만 치료했습니다. 사실 이것도 인과병의 한 종류입니다.
- 외사의 침입. 자연계에는 매 순간마다 작은 생명들이 죽어 가는데, 그것들은 죽은 뒤 생물파의 형태로 공간에 존재하되 공간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화된 설비, 이를테면 휴대폰·컴퓨터 등이 대량으로 사용되고, 또 대기 오염이나 기후 등의 원인으로 그것들의 생존 공간에 일정한 간섭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 어느 장기에 조금만 음양의 불균형이 생기고, 인체의 생물파 파장이 진동하는 주파수가 그것들과 일치하기만 하면, 그것들은 천 리든 만 리든 막론하고 순식간에 사람 몸에 붙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되면 장기에 미치는 손상과 해가 상당히 큽니다. 예컨대 일찍이 두 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둘 다 거머리가 붙은 경우였습니다. 하나는 간에 붙어 용혈성 빈혈을 일으켰는데, 병원에서는 줄곧 병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비장에 붙어 중초의 기맥이 통하지 않아 환자가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소복이 부풀어 오르고 비장도 비대해지고 허혈 상태가 되기 시작했으며, 병원에서는 그의 비장을 절제했지만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그 거머리가 여전히 그의 비장 맥도 안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외사가 몸에 붙은 경우에는 반드시 그것들을 맥도 밖으로 배출해야 환자가 완전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 외마의 부체. 이것은 우주 사이의 요괴·마귀·정령·괴물 따위가 몸에 붙는 것으로, 모두 환자와 맺어진 어떤 인연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신색이 보통 사람과 달라 울다가 웃고, 병이 심한 환자는 정신이 혼미해져 횡설수설합니다. 이는 외마들이 이미 그들의 신경계통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또 정신분열 환자도 이 병과 발병 증상이 같지만 발병 원인이 다르므로, 모든 정신병 환자가 이 부류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병은 증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만 있다면 사실 가장 치료하기 쉽습니다. 외마만 떠나면 환자는 곧 낫습니다. 병에 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신경계통이 손상되지 않았다면 약조차 먹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이런 부체들을 떠나게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의 숙세와 금생의 얽힌 일을 풀어 주고 원한을 풀도록 도와야 하며, 필요할 때는 의사가 그들을 도와 그들 자신의 복덕과 공덕으로 빚을 갚게 해 주고, 그들을 구제하고 초탈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한 여자 환자가 진료소에 올 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환자 가족은 이런 상태가 20여 년째라고 했습니다. 이 환자는 바로 외마의 부체에 해당합니다. 저는 진단할 때 그녀의 부체와 대화를 나누어 도리를 설명하고, 그에게 일정한 보상을 해 주고 그와 환자 사이의 숙연을 풀어 주었더니 외마가 떠났습니다. 저는 환자에게 네 첩의 약을 지어 주어 그녀의 신경과 심신을 조절했고, 환자는 약을 먹고 나았으며,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나도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환자도 이 부류에 속했는데, 환자는 병에 걸리기 전에 몸이 매우 허약했기 때문에 부체가 떠난 뒤 신경계통의 손상이 컸고, 게다가 불면증에 혈압도 매우 높았으며 뇌실에도 소량의 물이 차 있었습니다. 다시 반년 넘게 조리한 뒤에야 거의 회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류의 병은 발병한 뒤 조리가 빠를수록 환자에게 남는 후유증이 적습니다.
이 네 가지 흔한 발병 원인 외에, 자연계의 큰 전염병 유행에 속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전염병은 사실 다른 차원에서 온 것입니다. 예컨대 일찍이 무수한 독물을 삼키며 수행하던 큰 구렁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만 년 넘게 수행해 왔습니다. 인간의 공업 소감이(인간의 공업은 살생에서 오고, 탐·진·치·만·의가 짙어진 데서 온다) 그것의 수행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우리 차원을 오염시켰습니다. 그것이 지나간 곳마다 초목이 모두 죽었고, 지구 상공 국지에 붉은 독무의 장이 나타났습니다. 이 독이 우리 호흡계통의 맥도에 들어와 서로 다른 환자와 결합하여 서로 다른 변이 균총을 만들어 내거나, 심한 경우에는 균류가 생길 겨를도 없이 곧바로 우리 폐부의 맥도를 부식시켜 폐 기능을 손상시킵니다. 현대 의학 수단으로는 환자가 이미 발병한 상태만 검사할 수 있을 뿐, 집단 발병의 심층적인 유인은 알 수 없습니다. 또 한 예로, 우리의 공업 소감이 다른 차원에 있는 전갈의 생활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에, 그것들이 어느 한 곳에 갑자기 대량으로 나타나 많은 가금이 중독되는 전염병이 유행했습니다. 그래서 우주장의 정화는 삼계가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살생의 업을 적게 짓고 사람마다 선한 마음을 많이 내는 것이 곧 우주의 정화에 큰 작용을 합니다.
사실 모든 병은 불법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업력의 현현입니다. 우리는 본래 업보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바세계에서 업력의 현현은 서로 다른 인연에 의해 발동되어서야 비로소 업의 종자가 성숙하게 됩니다. 제가 병을 분류하는 것도 다만 발병한 인연이 다름에 따라 치료를 구분하기 위함일 뿐입니다.
위의 여러 가지 병이 때로는 한 환자에게 동시에 나타나 몇 가지 병이 겹친 복합 증후군을 형성하기도 한다. 지난 2년간 이런 복합 증후군 환자가 급격히 늘었는데, 특히 40세 이후의 중장년층에서 두드러진다.
진찰할 때 나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다. 처음에는 오전에 환자 10명을 보고 나면 오후에는 반드시 여덟 시간가량 좌선을 해야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정력이 자라 하루 두 시간만 앉아도 되었지만, 심력의 소모가 상당히 커서 때로는 심장이 떨릴 만큼 지쳤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그러나 수행의 전 과정은 그 자체가 자아를 버리고 사사로움 없이 베푸는 과정이다. 좋은 인연을 널리 맺고 공덕을 원만히 이루기 위해 나는 이런 것들을 개의치 않았다.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환자들의 오해였다. 어떤 환자들은 병이 없음에도 나를 시험해 보거나 재미 삼아 진료를 보러 왔다. 내가 막 진료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런 일이 매일 벌어졌고, 나는 가급적 모든 환자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정성껏 온몸을 검진해 주었으며 그것도 무료로 해 주었다. 위안이 된 것은 그런 환자들조차 떠날 때면 모두 매우 만족해하며 사과의 뜻을 표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는 거의 80%의 환자가 진단을 받을 때 자신의 병세를 말하기를 꺼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래 다리가 아픈 환자가 다리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 나는 안에서 밖으로, 위에서 아래로 온몸을 다 검사한 끝에야 마침내 그의 다리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많은 환자는 오직 내 진단 수법에만 관심을 두고 그것이 특별하다고 여겼지만, 나는 오히려 치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승님에게 배운 독특한 한약 배합은 반드시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환자에게 복음을 가져다줄 것이다.
사실 환자들의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나는 여기서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다. 다만 너무 지칠 때면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스승님께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다. “환자가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마라. 네 공덕이 아직 원만하지 못한 탓이고, 중생의 탐진치만의가 본래 무겁기 때문이다. 네가 이미 보살도를 행하려는 마음을 냈으니 모든 중생을 제 친척처럼 여겨야 한다. 그들이 병고에 시달리는데 의술을 아는 네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 또 실제로 의술을 빙자해 사람을 속이는 자도 있으니 환자가 속임을 두려워한다. 너는 모든 것을 인연에 맡겨라. 너와 인연이 있는 환자는 자연히 너를 믿게 될 것이고, 네 치료 아래에서 완쾌될 것이다.”
행의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가급적 시간을 내어 좌선하며 선정을 닦고 불경도 읽었다. 스승님께서 나에게 읽으라고 권하신 불경은 오직 《유마힐소설경》 한 권뿐이었다. 그동안 나는 좌선할 때 밀교의 진언 지송과 수인으로 맥륜이 열리는 것을 돕기도 했다. 나는 선정 속에서 수증의 방법을 떠올리면 그것을 가져다 스스로 닦고 익히곤 했다. 스승님은 내가 어떤 법문을 배우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으시고 다만 “법문에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견지만 바르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선정 속에서 한 여사부에게 파산성모법문을 배우기도 했고, 원시천존에게 상승여단공을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선정 속에서 원시천존에게 상승여단공을, 또 다른 여사부에게는 파산성모법문을 배우기도 했다.)
스승님께서 나에게 세 번째 순례지가 보현보살의 도량인 아미산이라고 알려 주셨다. 이번에는 동생이 나를 따라 나섰다. 집안에는 약간의 이견이 있었지만 반대가 격렬하지는 않았다. 스승님께서는 이것이 내가 ‘인욕계’를 지닌 공덕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미산에서 보름을 머물렀다. 우리는 길을 따라 있는 절에 묵으며 걸어가면서 풍경을 감상했다. 절을 지나치게 되면 들어가고, 해가 지면 가까운 절에 묵었다. 아미산에서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곳 절의 소식이 아주 맛있었다는 것과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는 점이었다. 금정에서 나는 보현보살을 만났다. 그분도 먼 곳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나를 보자 흰 코끼리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분이 나타낸 모습은 한창 나이의 아름다운 소녀였고, 색색의 리본으로 머리를 여러 갈래로 땋아 묶고 있었다. 그분은 아주 열정적이었고 웃음소리가 밝았다. 우리는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떠날 때 그분은 나에게 경전과 선물을 많이 주었다.
아미산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스승님의 통지를 받고 지장보살의 도량인 구화산을 순례하러 갔다. 우리는 역시 절을 찾아 묵었는데, 다만 구화산 정상에서 한 가지 불쾌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나는 구화산 정상의 절에 묵고 싶어 했다. 동생이 그 절의 객당에 가서 숙박을 청했는데, 객당의 스님은 그때 무슨 일인지 화가 나 있는 상태라 성난 얼굴로 거절했다. 내 동생이 다시 한 번 간청하려 하자 그 스님은 더욱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으며 동생을 쫓아내려 했다. 나는 그때 객당 문 앞에 서서 마음이 몹시 아팠다. 출가한 승려가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자비와 방편은커녕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우리는 곧 정상에서 내려와 정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외딴 절에 묵었다. 밤에 나는 선정 속에서 금정에 올랐는데, 지장왕보살이 걸어 나왔다. 그는 남자 모습을 드러냈고 키가 매우 크고 용모가 장엄했으며 손에는 석장 한 자루를 쥐고 있었고 기품에는 왕가의 풍모가 있었다. 그날 낮에 있던 일을 말하면서 나는 “여기 계신 제자들이 어찌 이 모양입니까?”라고 여쭈었다. 보살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무슨 모양? 내 제자는 바로 이 모양이지. 너는 왜 꼭 정상에서 묵으려 했느냐?”라고 하셨다. 내가 그곳의 기운이 좋아서 밤에 좌선하고 싶었다고 말하자, 보살님은 “네가 이 일에 대해 분별을 내지 않고 화내지 않았다면, 너는 이미 정상에서 한 밤을 좌선한 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꿈에서 막 깨어난 듯 마음속으로 줄곧 부끄럽다고 외쳤다. 언제 내가 이토록 상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이후 나는 선정 속에서 지장보살을 몇 번 더 뵈었는데, 그는 때마다 다른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날처럼 엄숙하고 말투가 딱딱하고 무뚝뚝하지는 않았으며 매우 자애롭고 온화했다.
네 대 불교 성지를 모두 순례한 뒤에도 나는 다시 2년여 동안 집에서 수행하며 진료를 보았다. 때로는 오대산에 가서 짧은 기간 폐관하기도 했는데, 폐관할 때는 보통 굶을 때도 있었고 하루에 한 끼만 먹을 때도 있었다. 모든 시간을 좌선하거나 책을 읽는 데 썼다. 사실 그것을 폐관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다만 짧은 시간 세속의 잡다한 일과 칠정육욕의 간섭을 피해 조용히 며칠을 수증하는 것일 뿐이다.
어느 해 겨울, 나는 오대산에 있는 작은 여관에 묵은 적이 있다. 나는 자주 2층 발코니에 서서 설경을 바라보곤 했다. 매일 아침 나는 남루한 옷을 입은 스님이 삼보일배로 대라정을 향해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당시 나는 고행 수행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해 약간의 편견이 있어서, 그것을 마음 밖에서 법을 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어느 날 사부님께서 갑자기 나에게 한 걸음마다 절을 하며 대라정에 오르라고 하셨다. 아마 내가 그 스님에 대해 분별심을 품은 것을 사부님께서 아시고 나를 벌하시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라정에는 1080개의 계단이 있는데, 그 전날 밤에 눈이 내려 계단 위에 두껍게 쌓여 있었다.
나는 솜옷과 솜바지를 입고 장갑을 끼고 오르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입속으로 나무대지문수보살을 조용히 염불하여라.” 나는 당연히 그대로 따랐다. 평소에도 대라정에는 여러 번 올랐지만 반쯤 오르면 항상 숨이 차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를수록 더욱 편안해졌다. 마치 평지에 엎드려 몇 번 절을 한 것처럼 가벼웠다. 반쯤 올랐을 때 몇몇 관광객이 내 옆을 지나가는데, 그중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불쌍하네, 솜옷이 다 젖었잖아.” 다른 사람이 말했다. “이렇게 고생해서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로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고생이 아니에요, 저는 편안한걸요.”
나는 온몸의 에너지가 빙하가 녹듯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훈훈하고 몸과 마음이 펴지며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꼭대기에 오른 뒤, 나는 내 호흡이 길고 고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막 선정에 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 눈과 입, 귀 속에서 연꽃이 한 송이씩 활짝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 후로 나는 고행을 닦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마음속으로 찬탄하며 그들을 수희했다. 그들이 느끼는 바는 우리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떤 법문이든 자신에게 맞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 후 나는 동생과 친구 한 명과 함께 다시 티베트로 갔다. 포탈라궁에서 나는 총카파 대사를 만났는데, 그가 나에게 밀교의 수행법 일부를 설명해 주었다. 밀교의 비법을 전수하는 방을 지나칠 때 나는 웃으며 총카파 대사에게 물었다. “정말로 전할 만한 밀법이 있습니까?” 대사가 말했다. “정말로 밀법이 있소. 믿지 못하겠다면 들어와 보시오. 내가 그대에게 밀법을 전해 주겠소.” 나는 그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그 앞에 서 있자 그는 갑자기 매우 장엄해졌고, 나도 순간 그 기운에 감화되어 몹시 공경스러워졌다. 그의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무탐――――무진――――무치――――무만――――무의” 그가 두 글자를 내뱉을 때마다 나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번쩍, 폭포 같은 백색 광명으로 한 번씩 씻겼다. 그가 모두 외치고 나자 내 몸과 마음은 눈부시게 밝아졌고, 마음은 고요하고 평안해졌으며, 온몸과 마음이 철저히 정화되었다……
어느 선정 수행 중에 나는 히말라야 산맥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두 개의 원뿔 모양 빙주를 보았다. 아주 매끄러웠고, 기둥 속은 비어 있었으며 위쪽에 구멍이 있었다. 나는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위쪽 구멍으로 들어가 문안을 드렸다. 과연 그 안에는 수행자가 한 분 앉아 있었는데, 그분은 나를 보자 매우 반가워하며 아주 상냥하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저쪽 빙주에 있는 사람이 자기 형이라면서, 두 사람 모두 밀교의 대수인을 수련하고 있으며 이곳에 온 지 30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그 안의 온도는 입김을 불면 곧 얼음이 될 정도였다. 우리는 아주 마음이 잘 맞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나는 심륜을 전환하는 중이라 가슴이 몹시 아팠다. 그는 나를 살펴보고 말했다. “맥독이 심장을 공격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대는 기운이 부족하오.” 그러고는 내게 손을 펴게 한 뒤 자기 손바닥을 내 손바닥에 맞대었다. 그러자 그의 몸속에서 강한 전류 같은 것이 솟아나 빠르게 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약 30분가량 이어지다가 그는 갑자기 손바닥을 거두며 아주 약한 숨결로 내게 말했다. “나는 방금 내 몸속의 에너지를 모두 그대의 맥도에 주입했소. 그대가 하루빨리 원만을 이루고 불법을 널리 펴기를 바라오.” 나는 크게 놀라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별것 아니오. 나는 원래 요즘 열반할 준비를 하고 있었소. 그래서 이 에너지들은 나에게 그다지 쓸모가 없소. 나는 가오. 미안하지만 저쪽에 가서 우리 형님께 한마디 전해 주게.”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저쪽 빙주 안에 와 있었다. 그 안의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 아우께서 열반하시려 합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듣자마자 허공으로 솟아올라 기둥 밖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약간 침통한 표정을 띠고 돌아왔다. 그는 원망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가기 전에 인사라도 할 것이지.” 나는 마음 아프게 방금 있던 일을 그에게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듣고 나서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그대는 슬퍼하지 말게. 그대 탓이 아니오. 우리 형제는 그대와 인연이 있소. 우리는 인간 세상에 온 지 300년이 넘었으니 이제 떠날 때도 되었소. 떠나기 전에 그대 수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우리는 매우 기쁘오.” 말을 마치자 그는 갑자기 솟아올라 공중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자기 정수리로 내 정수리를 받쳤다. 나는 문득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 머리가 그의 머리와 붙어버린 듯했고 나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그의 에너지가 산을 밀고 바다를 뒤엎는 듯한 기세로 그의 정수리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불과 몇 분 뒤 그는 내 정수리에서 몸을 뒤집어 내려와 결가부좌를 튼 채 열반에 들었다. 나는 멍하니 그의 곁에 앉아 마음이 출렁였다. 마침내 마음이 평정을 되찾자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불렀다. 사부님이 빙주 밖에 나타나셨다. 그는 방금 일어난 모든 일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는 내게 빙주를 향해 몇 번 절을 하게 했다…… 히말라야에서 또 몇 차례의 기이한 만남이 있었는데, 모두 지금도 생각하면 감동이 새롭다. 그로 인해 나는 늘 자신이 남을 위해 베푼 것이 너무 적다고 느끼게 되었다. 내가 티베트 땅에서 머문 시간은 20여 일이었다.
티베트에서 돌아온 뒤 나의 육체적 전환은 꽤 격렬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목 부위의 기맥이 뚫리고 전환되는 과정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지냈으며,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말도 할 수 없었고, 밥도 먹을 수 없었다. 물을 마시기만 해도 강철 칼로 내 목과 식도를 긁는 듯했다. 나는 손짓과 글씨로 가족에게 나를 걱정하지 말라고 알렸다. 매일 밤 자시가 되면 내 두 폐엽의 기맥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다. 마치 펌프로 갑자기 공기를 폐 속에 주입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즉시 침대 위에 쪼그려 앉거나 반쯤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부님이 곁에서 격려해 주시지 않았다면 괴로워서 무너져 내릴 뻔했다. 이런 상태가 보름가량 이어진 뒤 갑자기 모든 증상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나는 기력이 넘치고 온몸이 가뿐했다. 아침에 다시 거실의 좌복 위에 단정히 앉았을 때 나는 감격하여 눈물이 얼굴 가득 흘러내렸다. 드디어 다시 좌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내가 살던 건물 옆에는 발전소가 하나 있었는데, 매일 아침 3시부터 큰 굴뚝에서 폐가스를 배출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아침 공기가 가장 나빴다. 그런데 그날 나는 좌선하는 가운데, 그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내 콧속으로 들어올 때 문득 그 냄새가 변화된 것을 발견했다. 그것들이 내 목에서 시원하고 달콤하게 느껴졌으며, 마치 순수한 산소를 들이마시는 듯했다. 내 폐는 정화기로 변한 듯했다. 나는 흥분해서 이 소식을 사부님께 알렸다. 사부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씀하셨다. “기뻐하지 마라. 네 목의 기맥은 아직 다 전환되지 않았고 맥륜도 3분의 1밖에 열리지 않았다. 어떤 맥도는 다시 막힐 것이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귀 부위 기맥의 전환은 그리 괴롭지 않았다. 우선 뒷머리 옥침 자리가 저리고 붓고, 좌선할 때 귀속에서 폭발음과 짹짹거리는 새 울음소리가 들렸으며, 양쪽 귀의 청력이 떨어지고 둔해졌다. 때로는 좌선 중에 귀속에서 원뿔 모양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거꾸로 선 갖가지 형상도 보였다. 어느 때 선정 가운데 문수보살이 어린 동자를 데리고 와서 내 이근을 씻어 주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 동자가 물 한 그릇을 받들고 있었는데, 문수보살은 노스님으로 화현하여 무엇인가를 내 귀속에 넣어 씻어 주었다. 나는 내 귀에서 끈적끈적하고 지저분한 것이 이따금 흘러나오는 것만 볼 수 있었다. 문수보살이 쓴 물은 방금 서방극락세계에서 가져온 팔공덕수였다. 이때 두 노인이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던 참에 코를 막고 멈춰 섰다. 그리고 “어찌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는가!”라고 말하며 싫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동자는 그 말을 듣고 두 노인에게 “무례하게 굴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두 노인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코를 막은 채 조용히 곁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문수보살이 대략 30분가량 씻어 주고 나서야 떠난 것 같았다. 출정한 뒤 문득 정신이 맑고 상쾌해졌지만, 귀속이 조금 아팠다. 며칠 뒤 나는 길가에 서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리의 모든 시끄러운 소음이 내가 좋아하는 해조음으로 변했다. 눈앞에 쉼 없이 오가는 차와 사람, 건물이 모두 신기루처럼 변했고, 나 자신까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나는 조용히 서서 몸과 마음이 해조음 속에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시간의 흐름도 모른 채, 공간의 개념을 초월해 있었다……
나는 선정 가운데서 갖가지 법문을 모두 빠르게 성취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생리적 기맥의 전환은 여전히 한 걸음 한 걸음 진행되고 있으며 매우 더디다고 느꼈다. 지금까지의 나의 생리적 전환의 양상과 규칙을 간단히 적어 보려 한다. 처음 좌선을 시작했을 때 나는 그저 여러 경계 속에서 배우고 놀기만 했다. (나는 그것이 다만 내 숙세의 인연과 사부님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부님들이 전수해 주신 것을 모두 배운 뒤에는, 오히려 내 경험이 보통 사람들의 좌선 경험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나는 곧바로 빛의 경지로 들어갔고, 경계와 생각이 점점 줄어들어 대부분의 시간을 여여부동한 백색광 속에서 보냈다. 때로는 내가 빛으로 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책에서 말하는 어떤 맥도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때로는 좌선 중에 자신의 좌복을 보기도 했다. 나는 백색광이나 아무 색깔도 없는 빛 속에 있었다. 그렇게 일 년 남짓 지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자신의 중맥, 좌맥, 우맥이 나타나는 것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나는 자신의 장기와 사지, 온몸의 백맥을 보았고, 천둥 같은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다. 피가 흐르는 소리는 시냇물이 졸졸졸 흥겹게 노래하는 것 같았고, 지구가 도는 소리, 우주의 텅 빈 메아리, 내 자신의 호흡 소리도 들렸다. 게다가 온몸의 모공에서 풍기는 악취까지 맡을 수 있었다. 사람의 몸이 참으로 거칠고 조잡한 것임을 깨달았고, 그 기간 동안 세상이 몹시 싫어져 강렬한 출리심이 일어났다. 선정의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내 의념은 점점 더 집중되었고, 앞서 말한 일들에 더 이상 방해받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생각은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폐호흡이 멎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내 정수리 윤과 아랫배에 구식과 태식이 거듭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얼마 뒤에는 정수리가 수시로 시원해졌는데, 대략 몇 분에 한 번꼴이었다. 더 나아가 태식이 사라지고, 마치 한 줄기 기운이 흉추 부위에 머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중맥이 아니라 척추에 있었다. 그 한 점 기운은 응결되어 움직이지 않아서 먹지도 마시지도 숨 쉬지도 않게 해 주었고, 얼마든지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흡이 멎기 시작한 때부터 잡념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태식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졸화가 곧 켜졌고 아랫배가 따뜻해졌다. 이때 평소의 관조 공부, 곧 기심동념을 잘 파악하는 공부가 선정 공부와 서로 어우러지면, 난상이 나타남에 따라 진식이 발동하여 온몸의 맥도가 자욱한 진기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따뜻하고 포근하며 부드러워 몹시 편안했고, 동시에 마음속에 한량없는 기쁨이 생겨났다. 이것은 내가 수행과 증득 과정에서 겪은 생리적 변화의 아주 일부분이다. 나는 이것이 누구나 수행과 증득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리적 전환이 심리적 전환을 촉진하여, 그로써 습기를 정화하고 지혜를 여는 것이다. 그리고 전환을 일으키는 생리적 에너지의 응집에는 선정 공부 외에, 더욱 중요한 것은 심량의 광대함이다. 일찍이 나는 불경에 한 모공 속에 한 세계가 있다고 기록된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런 경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다면 그 몸이 얼마나 커야 하며, 어떻게 한순간에 모든 모공과 모든 세계의 상황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한 번 선정에서 문득 이 경지를 몸소 증득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자신이 하나의 큰 원경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내 육체의 모든 모공 속에 금강이 앉거나 서 있었고, 저마다의 금강 표정과 동작이 또렷이 보였다. 삼천대천세계를 보니 참으로 손바닥 위의 과일 하나처럼 한눈에 환히 들어왔다. 중요한 것은, 내 몸이 커진 것이 아니라 심량이 태허를 포용하며, 심량은 그 크기에는 밖이 없고 그 작음에는 안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비록 예전에도 불경의 기록을 본 적이 있었지만, 언제나 눈앞을 스쳐 가는 구름과 연기 같았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증이 내게 평생의 이익을 안겨 주었다. 그 순간, 이 육체의 명상이 곧 거짓된 나임을 참으로 알게 되었고, 참나의 본래 면목을 알게 되었다. 선종의 공안인 ‘원래 비구니는 여자인 것이다’, 또는 ‘콧구멍은 원래 아래를 향하고 있다’ 같은 공안이 활연히 밝혀져, 그만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그때 선정에서 나온 나는 울었다. 은사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의 자비에 감사드린다!
내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이 몇 년 동안 수행하느라 가정에 쏟은 것이 너무 적다. 이제 또 광둥으로 가려 하니, 천 리나 떨어진 곳에서 부모님이 너를 걱정하고 염려하게 하겠다. 옛말에 ‘부모님이 계시면 멀리 여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으냐?” 나는 그에게 말했다. 보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나는 부모님과 20여 년을 함께 살았다. 부모님은 내가 곁에 있다고 해서 번뇌를 멈추지 않았고, 고통을 멈추지 않았으며, 병고에 시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번뇌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무수히 보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두 분 다 예순이 넘은 분들이라 남은 생명이 얼마 없다. 나는 두 분이 임종 때 자신들이 바라는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인과를 깊이 믿는 사람이다. 내 효도는 부모님을 생생세세의 윤회에서 해탈시켜, 두 분이 생생세세 다시는 번뇌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출발할 때 늙으신 부모님과 어린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갈등했다. 나는 오직 내 수행의 모든 공덕을 그분들에게 회향하고, 나에게 도움과 사랑을 베푼 모든 사람들에게 회향할 수밖에 없었다……
광저우에서 나는 그 도시의 광대함과 포용력을 느꼈고, 이 도시를 좋아하게 되었다.
광저우에서 나는 진료를 보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반년 뒤, 나는 광둥의 어느 사찰에 가서 도량을 세우는 일을 돕고자 발심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발심이 좋은데 어째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께서 가피하지 않으시고 역연이 성숙하게 하셨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기심동념을 자세히 살펴보니, 나는 ‘인연’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저 나와 어떤 사부님들과 인연이 있고, 그 사찰은 또 내가 좋아하는 도량이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조금만 집착하면 자신의 마음이 이미 도에서 벗어난 것이니, 당연히 역연이 성숙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도가 있는’ 곳이 곧 도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인연’에 치우치고, 청정함과 장엄함에 치우치고, 형상이 있는 수행 증득과 유위법에 치우친 것이었다. 사찰에서 걸어 나왔을 때 나는 순간 깨달았다. 삼천대천세계에 어느 곳이 도량이 아니며, 어느 곳이 도의 구현이 아니겠는가! ‘한 송이 꽃에 한 세계가 있고, 한 잎에 한 여래가 있다.’ 예전에도 외운 적이 있지만, 그때처럼 깊이 체험한 적은 없었다. 번잡한 시장으로 돌아오니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했다. 속세야말로 가장 크고 가장 원만한 도량이다. 진흙 속에서라야 성결한 연꽃이 피어나는 법이다. 진정으로 원만한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나면 곧 삼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도량은 바로 그의 몸과 입과 뜻 가운데 있다. 한 사람을 대하고 설법하는 것과 수천수만 명을 대하고 설법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네가 도의 구현이 되면 네 기심동념이 모두 설법이 되고, 입 밖에 내면 마땅히 사자후와 같으니, 어찌 홍법이라는 것이 따로 있겠는가.
이제 나는 광저우에 많은 친구가 있다. 그들은 거의 늘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왜 광저우에 왔느냐고. 나는 때때로 몇 가지 핑계를 대며 얼버무리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만약 네가 어느 한 순간 평등, 박애, 자비가 무엇인지 이해한다면, 네 모든 행위는 이유가 필요 없어진다. 너는 더 이상 네 스승에게 왜 그런지 묻지 않게 될 것이다. 수행의 전 과정에서 우리는 가정, 사업, 친구, 명예와 이익 등 모든 외적인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우리는 자신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집을 깨는 과정은 두 눈 뜨고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원만한 불과다. 이 경지에 이르려면 너는 반드시 박애와 대자대비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원만해질 수 없다. 그 무아의 품성 속에서 모든 행위는 다만 인연의 필요일 뿐이다.
올해 3월에 나는 중국 불교의 마지막 대도량인 운남 계족산 순례를 마쳤다. 우리 일행 다섯 명은 먼저 산기슭의 작은 사찰인 방광사에 묵었고, 다음 날 화수문으로 향했다. 길이 꽤 험했는데, 작은 사찰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모두 지쳐 숨이 찼다. 절 문에 ‘구하면 반드시 응한다’고 쓰인 것이 보였다. 아마 절 안에 관세음보살을 모셔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어가 보니, 한 분의 불상이 평소 사찰에서 모시는 관세음보살의 모습과는 달랐다. 어떤 보살이든 간에 기원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사찰을 참배하면서 처음으로 나는 매우 간절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마음속에 한 점 잡념도 없이 보살님께 부모님의 건강을 기원했다. 자신의 수행 공덕을 부모님께 회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의 불상에서 큰 금빛 광명이 쏟아져 나왔다. 허공에 가섭존자의 장엄한 법상이 나타났다. 그는 “그대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내 부모님도 허공에 나타났다. 존자는 산 아래의 팔공덕수를 그들의 정수리에 뿌렸고, 그러자 형상이 사라졌다. 그때 나는 문득 우리가 이미 화수문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과연 작은 사찰 뒤편이 바로 가섭존자가 육신을 머문 채 세상에 계시며 선정에 드신 동굴이었다. 나는 동굴 밖에 다시 조용히 앉았다. 선정에 들자 동굴 입구에 큰 칼을 짚고 선 호법이 서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의 왼쪽 어깨에는 흰 큰 새 한 마리가 머물러 있었다. 이 새는 가섭존자의 사자로, 인연 있는 중생들을 가섭존자께 인도하곤 했다. 동굴 문이 열렸고, 입구에 서 있던 호법 사자가 나를 들어오게 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동굴은 매우 컸고,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위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나는 빛이 향하는 방향으로 십여 걸음 걸어가자, 회색 장삼을 입고 손에 염주를 쥔 가섭존자가 키가 훤칠하게 아주 자유롭고 평온한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내가 걸으면서 사방을 둘러보는 것을 보고는 평온하게 말했다. “둘러보지 마라. 내 동굴에는 아무것도 없느니라. 동굴을 나가 위쪽으로 올라가면 아주 맛있는 소식이 있느니라.” 나도 웃으며 몸을 돌려 떠났다.
동굴을 나오니 나는 정말 배가 고팠고, 동행한 몇 사람도 몹시 배가 고팠다. 우리는 한 채식 음식점에서 게걸스럽게 배불리 먹은 뒤 돌아갈 준비를 했다. 화수문을 지나가다가 나는 문득 가섭존자께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섭존자가 동굴에서 나와 먼 길을 떠날 듯한 모습인 것이 보였다. 나는 그분께 작별 인사를 드렸지만, 그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가라는 뜻이었다. 나는 마음이 조금 서운했다. ‘이렇게 먼 길을 와서 참배를 드렸는데, 무언가 법문 같은 말씀을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가섭존자는 이미 내 생각을 알아차렸다. 그는 말했다. “그대는 언제 왔었으며, 또 언제 떠난 적이 있었는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존자가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자신의 습기와 집착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늘 평범함 속에서 살지 못하고, 항상 반연심으로 무엇인가를 바라며, 평범함이 곧 도의 참뜻이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음을 깨닫지 못한다. 내가 또 무엇을 그리워하고 애태우고 있는 것인가?
여기서 나는 처음 광저우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남화사에 가서 육조의 진신을 배알했던 일이 떠오른다. 나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육조의 진신 앞에 꿇어앉아 몇 번 절을 한 뒤, 육조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어 곧바로 육조의 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대전 안의 세 분의 육신이 세 분의 보살로 변했다. 그들은 나를 보고는 서로 웃음을 주고받았다. 나는 말했다. “세 보살님, 안녕하십니까! 육조대사님, 달마조사께서 전해 주신 선종의 심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육조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육조의 마음속에서 갑자기 하얀 광명이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대전 전체를 뒤덮었다. 대전 안에는 반짝이는 무수한 광자가 흐르기 시작했고, 광자 속에는 크고 작은 무수한 ‘심’ 자가 있었다. 나는 강력한 기운의 장에 휩싸여, 자신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존재하면서, 또한 자신이 광자와 함께 흘러가는 즐거운 흐름이 되는 것을 느꼈다. 광자와 심이 회전했다. 나는 정화되고 씻겨 내려갔다. 얼마나 오래 지났는지 모르게, 나는 그 상태에서 빠져나왔고, 대전은 이미 평온을 되찾고 있었다. 육조의 육신상은 다시 단정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보살도 심도 없었다. 나는 일어나 대전을 나서는 순간, 문득 육조의 진신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싶은 미련이 생겼고, 방금의 경계에 대해 조그마한 의문도 일어났다. 그런데 내가 뒤돌아보았을 때, 육조가 자신의 육신상 뒤에 서서 발로 그 육신을 공양대에서 걷어차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머리에 두른 붉은 휘장도 찢어 버렸다. 나는 대전 전체가 진동하고 지붕에서 무수한 먼지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 마음이 조금만 더 머물렀더라면, 육조가 대전 전체를 무너뜨렸을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돌려 마침내 아무 미련도 없이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나의 수행 경험 기록은 여기서 한 단락을 마친다. 나는 이 과정에서의 깨달음이나 얻은 바를 쓰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보고 들은 것과 몇 가지 생리적 체험을 사실 그대로 썼을 뿐이다.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므로 수행의 경지와 체험도 각각 다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하나뿐인 존재이며, 어떤 법문이 더 낫다거나 누구의 수행 체험이 더 훌륭하다는 것도 없다! 십여 년의 수행 과정은 다만 내가 진정한 평범함이 무엇인지를 점점 더 깨닫게 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미친 마음이 문득 쉬어, 더욱 착실하게 일하고 생활하고 배우며,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온 마음으로 생명의 매 순간을 누리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눈을 뜨나 감으나 모두 경계일 뿐이다. 증득해야 할 이 ‘나’, 증득되는 그 ‘과’, 그리고 사선팔정도 모두 허망한 경계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에 분별이 없어 인연을 따라 자재하다면, 그때야말로 영원의 참뜻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불법을 수행하고 증득하는 모든 도반들은 무엇이든 성급히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남의 수행 증과를 쉽사리 자신의 견해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 진실로 하나의 법문을 선택하여 몸과 마음으로 깊이 들어가 실제로 증험하라. 반드시 자신이 직접 법의 맛을 맛보아야만 진실한 수용을 얻을 수 있다. (끝)